[스크랩] 생활 / 변희수 생활 변희수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꽃이 핀다 그곳이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도 핀다 꽃은 최선에 대해서 후회와 미련에 대해서 빨갛고 노란 생각을 해 본다 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꽃에 대해서 처음으로 그 근처라고 생각해 본다 생각보다 먼 근처에서 너무 가까운 일처럼 꽃들..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거짓말 / 신미균 거짓말 신미균 간단히 입고 벗을 수 있다 일상적인 일을 하거나 조깅 에어로빅을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입고만 있어도 땀이 난다 가볍고 튼튼하다 모자가 달려 있어 여차하면 떼어서 남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 우주인의 멋과 색깔도 느낄 수 있다 한번 입기 시작하면 계속 입고 싶어진..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저는 발 / 권주열 저는 발 권주열 발걸음은 발의 말이다 오른 발은 정확한 말을 한다 말소리가 또렷하고 카랑하다 카랑한 말이 지나고 다음 차례 왼발을 들자 보폭이 어눌하다 무슨 말인지 간격이 사라지고 없다 헐렁한 발을 들고 그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어디에 놓을지, 포기하지 않고 포기하는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 / 나희덕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 나희덕 '쓰다'라는 동사의 맛이 항상 쓴 것은 아닙니다 '보다'라는 동사는 때로 조사나 부사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라는 부사를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 '빨리'라는 부사도 조심하세요 '항상'이라는 부사야말로 항상 주의해야 할 물건이지요 하느님이 부사를..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모래 날다 / 홍일표 모래 날다 홍일표 섬진강 모래알들은 손이 없다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최소화에 골몰해온 결과이다 잘라내고 깎아낸 마음의 뼛조각들 어디선가 한 번쯤 스치고 지나갔을 아득한 눈빛들 모래밭에 앉아 진흙투성이 심장을 꺼내본다 진흙의 수많은 손들이 담쟁이 넝쿨처럼 붙어 있는 모..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슈퍼문super moon / 강영은 슈퍼문super moon 강영은 시체 위에는 고추밭과 수박밭이 있었는데 개는 안 짖었습니까. 손과 발이 이유 없이 고개를 돌릴 때 달이 떠올랐다. 하반신이 날씬한 에볼라가 검은 대륙을 껴안을 때 달이 떠올랐다. 합삭이 될 때까지 지속되는 혼돈. 위성 같은 연인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때 달..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구부린 책 / 송종규 구부린 책 송종규 켜켜 햇빛이 차올라 저 나무는 완성되었을 것이다 꽃이 피는 순간을 고요히 지켜보던 어린 나방은 마침내 날개를 펴, 공중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바스러질 듯 하얗게 삭은 세월이 우체국을 세워 올렸을 것이다 숲과 별빛과 물풀들의 기억으로 악어는 헤엄쳐 나가고 행..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하루 사용법 / 조재형 하루 사용법 조재형 슬픔은 수령하되 눈물은 남용 말 것 주머니가 가벼우면 미소를 얹어줄 것 지갑과 안전거리를 유지할 것 침묵의 틈에 매운 대화를 첨가할 것 어제와 비교되며 부서진 나를 이웃 동료와 견주지 말 것 인맥은 사람에 국한시키지 말 것 그늘에 빛을 채우는 일에 일 할은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말의 뼈 / 이영옥 말의 뼈 이영옥 발을 버린 말 물 밑에서 조용조용 흘러가는 말 한 번씩 수면 위로 허우적거리는 루머의 팔과 다리 떠도는 말에서 귀를 건져낸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입술 위에 위태롭게 올린 말들 가장 먼저 등을 보인 말이 제일 따뜻했다 너의 친절한 입모양은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콩 / 문정희 콩 문정희 풀벌레나 차라리 씀바귀라도 될 일이다 일 년 가야 기침 한번 없는 무심한 밭두렁에 몸을 얽히어 새끼들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부끄러운 낮보다는 밤을 틈타서 손을 뻗쳐 저 하늘의 꿈을 감다가 접근해 오는 가을만 칭칭 감았다 이 몽매한 죄 순결의 비린내를 가시게 하고 마.. 좋은시 2019.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