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격증 / 김상배 자격증 김상배 나는 나이가 쉰일곱이고 스물한 살 때부터 시를 썼으며 시집을 세 권이나 냈지만 사람들은 나더러 등단을 하란다 무려 삼십여 년 동안을 함께 동인 활동을 해온 시인들까지 나이가 쉰일곱인 나에게 언제 등단할 거냐고 묻는다 시집을 세권이나 낸 나에게 이제는 등단을 해..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경찰서 / 임승유 경찰서 임승유 경찰서를 보고 있엇다. 경찰서가 보이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보고 싶다면 위치를 잘 잡으면 된다. 그것 말고도 더 있다. 경찰서 바깥에서는 경찰서가 더 잘 보였다. 다른 것들도 보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계속 보고 있으니까 가벼워졌다. 멀지 않으니까 좋..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뒷모습 / 김경성 뒷모습 김경성 욕실 벽을 오르내리는 도마뱀의 행방을 쫓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샤워기 옆에서 물길을 읽고 어떤 날에는 구석에 엎드려서 곰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마음의 부리가 예민해진 날에는 쏜살같이 어딘가에 숨어 버린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물소리가 밀림 속 몬스테라 잎을..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포도알 / 안소랑 포도알 안소랑 제비꽃 속에서 얼굴 하나를 꺼낸다 잘 빚어졌구나, 무지개의 무표정과 안개의 또렷한 눈빛으로 보랏빛 머리칼을 가진 아이야 착각을 가르치는 바보들과 온종일 봄꽃들이 내뱉는 과격한 기침소리가 이곳에는 가득하다 마지막 변명처럼 포도알이 익어가는 계절 화끈거리는..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초원에서 문신을 새기다 / 박남준 초원에서 문신을 새기다 박남준 한때는 강력한 제국을 이뤘으나 변방으로 내몰린 나라 가다가다 몽골의 초원을 달리다 신기루처럼 만난 바다. 바다인줄 알았다 아니 바다였다 초원의 바다 그 초원의 바다가 종일 시야의 먼 경계를 따라다녔다 우기의 몽골 벼락이 내리 꽂히는 나무 같은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엉거주춤 / 정수자<시조> 엉거주춤 정수자 욱여넣은 새 구두에 뒤꿈치를 깨물리며 만혼의 식장을 엉거주춤 찍고 올 때 생이란 무지외반증처럼 울며 걷는 거였다 부풀던 물집 터져 집이 점점 멀어져도 절며 절며 신고 가는 낙장불입 진창처럼 틀어진 엄지발가락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신도 벗도 못 한 채 판돈 없..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시인 앨범 7 / 김상미 시인앨범 7 김상미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 그 시를 읽으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시를 쓰고 싶다 아니다, 모두가 다 읽는 시를 쓰고 싶다 그 시를 읽으면 죽어가던 것들도 생생히 살아나는 시를 쓰고 싶다 꿈 같은 일이다 아무리 좋은 시에 앙심을 품고 , 주먹을 쥐고, 간절히 갈구..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첫줄 / 길상호 첫줄 길상호 거미줄을 엮을 때 거미는 첫줄을 바람에 맡긴다고 하네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그리하여 목숨까지 버티게 해주는 첫줄, 은빛 그물이 그 줄을 중심으로 엮어간다네 바람을 읽지 못하는 나의 시는 매일 던져도 가 닿지 못하는 거기, 오늘도 헝클어진 그물 안에 내가 잡혀들고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꽃의 서사 / 박기섭<시조> 꽃의 서사 박기섭 꽃의 하복부엔 범람의 기억이 있다 전력 질주 끝에 터지는 모세혈관 겹겹이 오므린 시간의, 그 오래고 먼 기억 피를 흘리면서 황급히 피었다가 피를 닦으면서 서둘러 지기도 하는 꽃이여, 뉠 곳도 없는 그대 전라의 무게여 꽃의 낯바닥엔 짓무른 자국이 있다 신음을 삼..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우리 동네 황후 이야기 / 고재종 우리 동네 황후 이야기 고재종 우리 동네 이장부인은요, 몇 십 년 시집살이 끝에 딱 한번 일을 치고 말았는데요. 치매에 걸려 혼자 사는 친정아버지를 집에 모셔왔다가 시어머니에게 된통 당했다지요. 그런데도 역성 한번 들어주지 않고 침묵하는 남편의 낯짝이 순간 철판처럼 여겨졌다.. 좋은시 2019.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