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시인 앨범 7 / 김상미

문근영 2019. 1. 19. 08:53

시인앨범 7

 

김상미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

 그 시를 읽으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시를 쓰고 싶다

 아니다, 모두가 다 읽는 시를 쓰고 싶다

 그 시를 읽으면 죽어가던 것들도 생생히 살아나는 시를 쓰고 싶다

 

 꿈 같은 일이다

 

 아무리 좋은 시에 앙심을 품고 , 주먹을 쥐고, 간절히 갈구하며 훔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발을 동동 굴려도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그런 시를 쓰지 못하고

 이 시도 저 시도 다 쓰레기 같아

 활활 타오르는 시어들의 모닥불 속에 모두 던져 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대로 입히고 둘러줄 게 시밖에 없어

 뜬구름 잡듯 또다시 펜을 집어 든다

 

 이 우주에 시 아닌 것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절망에 눈이 먼 채로 큰소리치며 인습을 뛰어넘듯 용감하게

 있는대로 생식기를 발기시키면서

 

 허기지고 굶주린 시 속으로

 미치고 미친 시 속으로

 미치고 미쳐 꺼꾸러질 때까지

 꺼꾸러져 희디힌 뼛가루가 되어

 폭풍 속의 꽃가루처럼

 훨훨 한 편의 시로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현대시학> 2018년 9 · 10월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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