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실종 / 한용국 실종 한용국 누워 있는 남자의 입으로 공기가 밀려 들어간다 느릿느릿 기다려왔다는 듯이 열린 식도를 통과해 간다 곧 저 공기는 남자의 꼬리뼈에서 마지막 흔적을 밀어내리라 남겨질 한 줌의 질척함을 비둘기가 안다는 듯 고개 주억거리며 지나간다 십분 전 그는 마지막 담배를 피웠으..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9.25
[스크랩] 고슴도치의 마을 /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최승호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9.20
[스크랩]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2005 미당문학상 수상작 누가 울고 간다 문태준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9.14
[스크랩] 도너츠의 하루 / 조인호 도너츠의 하루 조인호 잘 튀겨낸 도너츠일수록 구멍은 둥글다 팔팔 끓는 기름마냥 꿈자리가 사나운 밤 속에 몸을 담갔다가 일어난 아침 둥근 창문을 열면 바람은 밀가루 반죽처럼 배배 꼬이면서 불어온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지문이 내 몸에 하얀 밀가루 자국을 남기는 오늘은 이상도 ..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8.20
[스크랩] 제14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대상작 - 굴참나무를 읽다 / 김현희 굴참나무를 읽다 김현희 옹이와 한 몸으로 사는 나무에선 묵은 종이 냄새가 난다 찢어진 쪽수처럼 상처는 나무의 이력을 늘려간다 청설모는 굴참나무의 교정사 밑줄 긋듯 나무를 타고 오르며 상수리를 정독하고 솎아 낸 탈자들로 새끼를 키운다 새순에선 갓 출판 된 신간처럼 풋내가 난..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6.12
[스크랩]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나의 연못 서윤후 1. 우리는 아직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동생 2. 고요한 교실 투명한 햇빛에 흩날리는 먼지 바라보다 철제 필통을 떨어트렸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귀가 빨개졌다 간밤에 깎은 연필들이 부러졌다 아무것도 적을 수 없는 흰 종이 앞 화분에서 길 잃은 꽃말처럼 나..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6.10
[스크랩] 2014년 4차 차세대예술인력육성 문학분야 선정작 / 류성훈 과도 (외 1편) 류성훈 더위가 더위를 깎는다. 싫어하는 과일만 더 달게 익어가는 일요일이 교과과정에 포함되어간다. 장난감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현관에서 매를 맞은 날. 싸우지 말라고 옥상은 한낮이 어지른 열기를 밤에게 되돌려주었고, 아무도 감사히 받지 않는 걸 알 만큼 머리가 굵..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6.09
[스크랩] 제35회 계명문화상 시 부문 가작 - 열하일기 / 전영아 [제35회 계명문화상 시 부문 가작] 열하일기 전영아 벽이 열렸다 닫히고 나는 열대에 들어왔다 투명한 저 벽을 경계로 온대와 열대가 극명하게 구분된다 먼저 온 누군가가 엎어 논 달구어진 사막을 내가 다시 뒤집어 엎어놓는다 여기는 지금 극한의 건기 구름이 낮게 깔리고 하늘이 가까..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6.08
[스크랩] 거울 속 거미줄 / 정용화 제14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거울 속 거미줄 / 정용화 덕천마을 재개발 지역 반쯤 해체된 빈집 시멘트벽에 걸린 깨진 거울 속으로 하늘이 세들어 있다 무너지려는 집을 얼마나 힘껏 모아쥐고 있었으면 거울 가득 저렇게 무수한 실금으로 짜여진 거미줄을 만들어 놓았을까 구름은 가던 길을..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6.07
[스크랩] 부활/ 이정우 부활/ 이정우 그대는 흰 치자꽃을 머리에 꽂고 올리브 숲을 걸어 나온다. 안식일 다음날 새벽, 어두운 나무 사이로 흰 옷자락이 보이고, 울고 있는 여자의 어깨 위로 하느님의 손이 얹힌다. 울지마라, '나'이니라. 이 흰 치자꽃을 네 머리에 꽂아주마. 그대는 흰 치자꽃을 머리에 꽂고 또한 ..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