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슈퍼문super moon / 강영은

문근영 2019. 1. 19. 08:51

슈퍼문super moon

 

강영은

 

 

  시체 위에는 고추밭과 수박밭이 있었는데 개는 안 짖었습니까.

 

  손과 발이 이유 없이 고개를 돌릴 때 달이 떠올랐다. 하반신이 날씬한 에볼라가 검은 대륙을 껴안을 때 달이 떠올랐다.

 

  합삭이 될 때까지 지속되는 혼돈.

 

  위성 같은 연인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때 달이 떠올랐다. 사람의 옷을 입은 늑대들이 말라붙은 대지의 젖가슴을 빨 때 달이 떠올랐다.

 

  별이 반짝이는 저쪽에서 달은 무슨 의미입니까, 의미와 무의미의 사이

 

  지구의 무릎 안쪽으로 커다란 자지가 들어왔다. 초록의, 눈부신 음부를 향해 지구의 흉곽이 부풀었다.

 

  삭망이 될 때까지 지속되는 폭력.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밤 달이 떠올랐다. 또 다른 위성을 지닌 것처럼 포기할 수 없는 달빛이 차올랐다.

 

  주기적인 바닷물처럼 다음 생은 약속치 말자.

 

  우리는 개처럼 윙크했다. 크고 아름다운 눈동자 가득 절망의 발바닥 같은 밀물이 출렁거렸다.

 

- 강영은 시집. 『마고의 항아리』.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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