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발
권주열
발걸음은 발의 말이다 오른 발은 정확한 말을 한다 말소리가 또렷하고 카랑하다 카랑한 말이 지나고 다음 차례 왼발을 들자 보폭이 어눌하다 무슨 말인지 간격이 사라지고 없다 헐렁한 발을 들고 그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어디에 놓을지, 포기하지 않고 포기하는 걸음, 걸음이 많을수록 입 안 가득 웅얼거리는 발 발바닥이 귀처럼 예민해진다 오른쪽 반대의 오른쪽으로 오른발에 종속된 왼발 질문이 가득한데 어떤 질문도 불필요한 발 말을 박탈당한 말처럼 오른발에 붙들려 균형을 잃고 휘청, 발과 발 사이 침묵이 흐른다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한 마디도 말해지지 않고 있다 왼발이 없는 목소리, 말의 바깥에 왼발을 디딘다
-모:든시 2018년 봄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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