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 좋은시 2008.11.08
의자 / 이정록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 좋은시 2008.11.08
마음의 서랍 / 강연호 마음의 서랍 ....... 강연호 이제는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 좋은시 2008.11.07
발바닥으로 읽다 / 조경희 발바닥으로 읽다 조경희 찌든 이불을 빤다 무거운 이불 한 채, 물에 불린다 모란 잎, 때 절은 이파리 고무통에 담그니 발바닥에 풋물이 든다 모란꽃이 쿨럭쿨럭 거품을 토해낸다 고무통 수북히 거품이 솟는다 맥을 짚듯 두 발로 더듬는다 삶에 찌든 내가 밟힌다 먼 기억 속 부드러운 섬모의 숲을 거슬.. 좋은시 2008.11.07
쳐들어오는 봄 / 김정희 쳐들어오는 봄 / 김정희 봄은 그 때 마루 끝에 앉은 고양이 이마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햇빛을 씹고있는 그 놈의 반쯤 닫힌 눈동자를 지나 겨드랑이를 비집고 나온 붓꽃잎을 지나 쪽마루 결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는데 몸살처럼 오소소 번지고 있었는데 바위들이 몸을 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미.. 좋은시 2008.11.07
서시 / 윤동주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 좋은시 2008.11.06
노을 / 기형도 노 을 기형도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볕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린 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몆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오후6시의 참혹한 형량 단 한 번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시간 바람은 긴 채.. 좋은시 2008.11.06
봉숭아 / 도종환 봉숭아 -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입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속에 내가 네 꽃입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 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 좋은시 2008.11.06
석양 / 김충규 석양 김충규 거대한 군불을 쬐려고 젖은 새들이 날아간다 아랫도리가 축축한 나무들은 이미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매운 연기 한 줌 피어오르지 않는 맑은 군불, 새들은 세상을 떠돌다 날개에 묻혀온 그을음을 탁탁 털어내고 날아간다 깨끗한 몸으로 쬐어야 하는 맑은 군불, 어떤 거대한 혀가 몰래 .. 좋은시 2008.11.05
천리 행군 / 고영민 천리행군 고영민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시작된 단풍 잎새 가득 꽉 채운 붉음의 완전군장으로 10월 5일 치악산을 거쳐 8일 지리산으로 남하한다 단풍은 하루에 남쪽으로 약 25킬로미터씩 능선을 타고 이동한다 무장공비처럼 빠르다 등산로 옆으로 휙휙, 지나가는 일사불란한 군홧발 소리 10월 중순에 속.. 좋은시 2008.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