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이해인 길 위에서 /이 해 인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없어서는 아니 될 하나의 길이 된다 내게 잠시 환한 불 밝혀주는 사랑의 말들도 다른 이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와 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 일을 하다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과 고민 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 살아갈수록 뭉게뭉게 피어 오르.. 좋은시 2008.11.11
물고기 그림자 / 황지우 물고기 그림자 / 황지우 맑은 물 아래 물고기는 간데없고 물고기 그림자들만 모래 바닥에 가라앉아 있네 잡아묵세, 잡아묵세, 마음이 잠깐 움직이는 사이에 물고기 그림자도 간데없네 눈 들어 대밭 속을 보니 초록 햇살을 걸러 받는 저 깊은 곳, 뭐랄까, 말하자면 어떤 神性같은 것이 거주한다 할까 바.. 좋은시 2008.11.10
실려가는 나무 / 나희덕 실려가는 나무 나 희 덕 풀어헤친 머리가 땅에 닿을락 말락 한다 또다른 生에 이식되기 위해 실려가는 나무, 트럭이 흔들릴 때마다 입술을 달싹여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다 언어의 도기가 조금은 들어간 얼굴이다 오래 서 있었던 몸에서는 자꾸만 신음소리 같은 게 흘러나오고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땅.. 좋은시 2008.11.10
맨발 / 문태준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 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 좋은시 2008.11.08
봄길 / 정호승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 좋은시 2008.11.08
바람의 말 / 마종기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 좋은시 2008.11.08
한 사람에게 / 이승하 한 사람에게 이승하 너의 속내에 자리한 아픔이 자라나 내가 겪고 있는 아픔보다 더 깊어진다면 나는 지금 자리 정리하고 일어나 네 곁으로 달려가야 하리라 비록 일상의 모든 끈끈한 것들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느낌뿐일지라도 작은 것을 아끼는 부드러운 마음과 작은 것은 버리는 단단한 마음으로.. 좋은시 2008.11.08
지나간다 / 천양희 지나간다 /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 좋은시 2008.11.08
그리움 속으로 / 문정희 그리움 속으로 문정희 저 산맥들은 무슨 커다란 그리움 있어 이렇듯 푸르름을 사방에다 풀어 놓았을까 바람 속에 쑥부쟁이 냄새 나는 그리운 고향에 가서 오늘은 토란잎처럼 싱신한 호미를 들고 진종일 흙을 파고 싶다 힘줄 서린 두 다리로 땅을 밟으며 착하고 따스한 눈매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 좋은시 2008.11.08
강 / 황인숙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 좋은시 200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