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마을 /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최승호(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 좋은시 2008.11.12
벚나무 아래서 / 장만호 벚나무 아래서/장만호 1. 물들의 우화 물들은 일어나 한 그루 나무가 된다 어두운 흙 속에서 이내 출렁이다가 제 몸을 이끌어 거슬러 올라갈 때 물들은 여기 나무의 굽은 등걸에서 잠시 동안은 머물렀을 것이다 제 몸을 수 없는 갈래로 나누고 나누어 나무의 등뼈와 푸른 핏줄을 통과할 만큼 작아졌을 .. 좋은시 2008.11.12
날아라 원더우먼 / 정끝별 날아라! 원더우먼 /정끝별 뽀빠이 살려줘요-소리치면 기다려요 올리브! 파이프를 문 뽀빠이가 씽 달려와 시금치 깡통을 먹은 후 부르르 알통을 흔들고는 브루터스를 무찌르고 올리브를 구해주곤 했어 타잔 구해줘요 타잔 - 외칠 때마다 치타 가죽인지 표범 가죽인지를 둘러찬 타잔이 아- 아아 나무와 .. 좋은시 2008.11.12
우리 살던 옛집 지붕 / 이문재 우리 살던 옛집 지붕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 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 좋은시 2008.11.12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성택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넣고 손으로 꾹꾹 눌러 .. 좋은시 2008.11.12
편지 / 이성복 편지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에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 좋은시 2008.11.12
구두 / 송찬호 구두/송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본다 그러나 그들.. 좋은시 2008.11.12
아내의 맨발 / 송수권 아내의 맨발 / 송수권 - 갑골문 甲骨文 뜨거운 모래밭 구멍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로 덮은 후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 발바닥은 꺾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 보였다 언제 깨어날지도 .. 좋은시 2008.11.12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 / 손택수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 - 1998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연탄이 떨어진 방, 원고지 붉은 빈칸 속에 긴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살아서 무덤에 들 듯 이불 돌돌 아랫도리에 손을 데우며, 창문 너머 금 간 하늘 아 래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전학 온 여자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보, 고, 싶, 다, 보, 고, 싶, 다.. 좋은시 2008.11.12
국수 / 백석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 좋은시 200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