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거기 연못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도 있느냐 오늘도 거기 앉아서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 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참이냐 거기 오늘도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눌러앉다 / 손현숙 눌러앉다 / 손현숙 이사를 결정한 후 그의 고민은 산수유 한 그루였다 30년 수유리를 몸에 담아 가지와 줄기를 말없이 키웠을, 말하자면 여기서 시 쓰고 새끼 키우고 세상과 맞서면서 그는 늙고 나무도 조용히 나이테를 늘렸으리라 올 봄 유난히 빨리 벙근 꽃망울 함께 떠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몸소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죽순 / 송연우 죽순 외 2편 / 송연우 삶의 현장은 어디나 싸움터였다 갑옷처럼 대껍질을 포개 입고 바람의 울음이 늘 출렁이던 대밭 발치의 죽순을 자르니 진저리치듯 대쪽들이 몸을 떤다 질긴 껍데기를 한장씩 벗기니 오동통 부드러운 하얀 모란 꽃빛살 마디마디 울음을 가둔 소리의 방 곧은 어미의 성깔을 빼닮은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미세스 두루뭉술 / 김경선 미세스 두루뭉술 / 김경선 펑퍼짐목 두루뭉술과 어류 네이버 지식in을 검색한다 학명: 통상 ‘콤플렉스우먼’으로 알려져 있음 분류: 어수룩한 두루뭉술과 생활방식: 어리숙해서 힘 있는 어종에게 잘 잡혀 먹힘 크기: 몸길이 약160cm 머리는 웃는 형상 체색: 계절별로 변하는 특징이 있음 분포지역: 도시..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시 복용 설명서 / 최형심 시 복용 설명서 / 최형심 [성상] 백색 혹은 미황색의 직사각형 용기에 든 검정색 문자 농축액. [효능 · 효과] 1. 가슴이 메마른 증상에 특효. 2. 별이나 달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음 (사용료 전혀 없음). [용법 · 용량] 1. 하루에 두 편 이상의 시를 흔들어 마실 것. 가능하면 시전문가가 만든 품질 좋은 시..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압축 / 마경덕 압축 / 마경덕 호두과자는 호두를 압축하고 붕어빵은 붕어를 요약하고… 짝퉁은 오리지널을 앞지른다. 무늬를 위조하면 유사품이 나오듯 위조된 학벌을 압축하면 박사도 나온다. 꽁치 통조림에는 압축된 바다가 있고 징코민에는 푸른 은행잎이 있고 아락실은 변비를 담고 게발을 압축하니 빨래집게..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기담외 1편 / 김경주 기담 외 1편 / 김경주 지도를 태운다 묻혀 있던 지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이 있다 그 잠을 이식한 화술은 내 무덤이 될까? 방에 앉아 이상한 줄을 토하는 인형(人形)을 본다 지상으로 흘러와 자신의 태몽으로 천천히 떠가는 인간에겐 자신의 태내로 기..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배꽃 / 안도현 배꽃 / 안도현 배꽃 속에 흑염소들이 몇 마리 살고 있다 뿔은 서로 떠받을 일이 없어 말랑말랑하고 엉덩이는 누구를 향해 실룩거려 보지 않아 볼그족족하다 가족끼리 영 재미없는 고스톱을 치는 것도 같고 배꽃천주교회에서 예배를 보며 묵상중인 것도 같다 그런데 올봄에 꽃잎 속의 흑염소들이 싸우..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석류 / 배우식 석류 / 배우식 할머니 웃으신다 하하하 할머니 한번 터뜨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할머니 자꾸자꾸 웃으신다 하하하 할머니 주름진 입술 오므리고 하하하 웃음을 흘리신다 하늘은 캄캄한데 입 터진 할머니, 기막히면 웃음이 줄줄 흐르는 할머니, 눈멀어 캄캄한 내 눈 속에, 울음을 한 소쿠리 떨어뜨리신..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석류 / 이문재 석류 / 이문재 인사동에 나갔다가 리어카 위에 놓인 석류송이들을 보았다 매우 젊은 아가씨 서넛이서 아, 석류 좀 봐, 하면서 달겨들었다 석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알갱이들이 민망해 보이기도 했다 리어카 위로 고개를 수그리는 젊은 여자들의 머리타래가 석류알을 몇 개 건드렸다 간지러워 보였다..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