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외 2편 / 송연우
삶의 현장은 어디나 싸움터였다
갑옷처럼 대껍질을 포개 입고
바람의 울음이 늘 출렁이던 대밭
발치의 죽순을 자르니
진저리치듯 대쪽들이 몸을 떤다
질긴 껍데기를 한장씩 벗기니
오동통 부드러운
하얀 모란 꽃빛살
마디마디 울음을 가둔 소리의 방
곧은 어미의 성깔을 빼닮은 어린 죽순을
뜨물에 보글보글 삶아 우려낸다
도마 위에 놓고 저민
노르스름한 어린 울음을
한 접시 식탁에 올려놓으면
구들장만한 돌을 밀어올리던 어린 장사
힘센 추억 하나 꿈속에서 돋아난다
울타리로 선 대나무숲이
저녁 내내 시비걸듯 서걱거린다
첫술 / 송연우
이팝나무에게
대문 앞
두서너 평 땅을 내주고
볼 때마다 푸른 등줄기 두드려 주었더니
점점 그늘이 넓어졌다
그늘에 앉아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내 귀는 파랗게 물든다
올봄
나를 위해
그녀가 첫밥을 짓는다
해살로 뜸들인
눈부신 쌀밥에
풋나물 향기 버무려 놓는다
그녀가 차려준 푸짐한 밥상
주린 눈이 먼저 첫술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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