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앉다 / 손현숙
이사를 결정한 후 그의 고민은
산수유 한 그루였다
30년 수유리를 몸에 담아
가지와 줄기를 말없이 키웠을, 말하자면
여기서 시 쓰고 새끼 키우고
세상과 맞서면서 그는 늙고
나무도 조용히 나이테를 늘렸으리라
올 봄 유난히 빨리 벙근 꽃망울
함께 떠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몸소 묘혈을 파 듯
마당을 파헤치며 한 삽 한 삽
흙을 떠 담는 그의 손톱 밑은 아리겠다
그는 조상의 묘지기로 부름 받는 거라 했다
선산을 목덜미에 두른 양지바른 집,
나고 자란 터에서 또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오늘처럼 산수유 한 그루 뿌리째 캐서 돌아가듯
그는 그의 몸마저 뽑아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 곁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다
산수유 꽃과 열매로 그 길 밝혀 주시길......
그는 늙은 아내와 나무 한 그루 데리고
고향땅 생가로 돌아갔다, 잘 내려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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