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좌판 / 김종미 고등어 좌판 / 김종미 구울 거요? 지질 거요? 내려칠 칼을 든 여자와 좌판의 고등어가 두 눈 빤히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염라대왕이 이런 기분일까 네 영혼을 지글지글 구워주랴? 아니면 얼큰하게 지져서 이 지옥을 기름지게 할까 그러고 보니 내 몸이 지옥이다 이 지옥 속에 감금된 영혼을 극락에 풀어..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날아라 가오리 / 이명윤 날아라 가오리 / 이명윤 자갈치역 지하도 납작 엎드린 등. 쏟아지는 눈길. 껌처럼 달라붙은 저 눈빛을 어디서 보았더라? 며칠 전 어시장 좌판, 큼직한 날개를 펼치고 엎드려 있던 더 할 말 없다는 듯 아랫배에 입을 숨기고 있던 가오리, 버스가 서지 않는 오지의 지명처럼 쓸쓸히 지나쳤던 그때 그 가-오..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고리 / 김후자 제17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고리 / 김후자 남자가 지하철에서 휴대용 접착고리를 판다 쉴 새 없이 상품을 선전하는 남자 스티커에 붙은 도금한 고리가 3kg 철근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리고 다시 이를 앙다문 고리가 5kg을 들어올린다 제 덩치보다 몇 백 배 많은 쇳덩이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하..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나문재 / 노희정 나문재* / 노희정 -강화도 · 21 인생이란 짜디짠 눈물방울이 아니던가 가난한 시집살이 짜도 짜다고 말 못하고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 타는 가슴처럼 언제나 삶의 갯벌에 서서 온몸으로 소금물 들이마시고 제멋대로 들락거리는 물살 같은 바람난 남편 붙잡아 둘 수도 없는 무력감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코스모스 / 송찬호 코스모스 / 송찬호 지난 팔월 아라비아 상인이 찾아와 코스모스 가을 신상품을 소개하고 돌아갔다 여전히 가늘고 긴 꽃대와 석청 냄새가 나는 꽃은 밀교에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헌데 나는 모가지가 가는 꽃에 대해서는 오래 바라보다 반짝이는 조약돌 하나 얹어두는 버릇이 있다 코스모스가 꼭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흰곰 / 김영식 흰곰 / 김영식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북극에 산다는 흰곰의 허기진 울음 같은, 냉기 자욱한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러나 백야의 툰드라 속으로 순록들이 눈썰매를 끌고 가거나 레밍을 움켜쥔 흰올빼미만 날아오를 뿐, 곰이 살고 있으리라는 짐작은 진즉부터 했었지만 고등어와 쇠..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빈방 / 마경덕 빈방 / 마경덕 우묵한 집,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누가 살다 갔나. 오래된 적막이 나선형으로 꼬여 있다. 한 줌의 고요, 한 줌의 마른 파도가 주홍빛 벽에 걸려 있다. 조심조심 바다 밑을 더듬으면 불쑥 목을 죄는 문어의 흡반, 불가사리에 쫓겨 참았던 숨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뽀글뽀글 물갈피에 쓴 일..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여행가방 / 박서영 여행가방 / 박서영 지퍼의 개화(開花), 그건 낡은 가죽가방을 열어 걸어온 길을 쏟아내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방 폭설이 내리는 가방 꽃 사태가 일어나는 가방 그건 파문을 모아두는 일이었는데 쏟아내 보니 그랬다 떠나온 풍경은 죄다 어딘가 아파 보였다 모아 두는 게 아니었는데, 지웠어야 했..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재테크 / 안도현 재테크 / 안도현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벼룩시장에 간을 내놓다 / 최정란 벼룩시장에 간을 내놓다 / 최정란 팝니다. 권리금 없습니다. 시설비 조금 인정하시면 바로 드립니다. 보수유지비가 만만찮을 것이라구요. 철거비가 더 들거라구요. 솔직히 동의합니다. 분해효소가 없어 소주 한 잔 이상 안 받고 이래저래 속 끓이는 날 많았으니 오죽 하겠습니까. 그래도 몇 군데 손보..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