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눈망울에 내리는 눈 / 송문헌 바람의 눈망울에 내리는 눈 / 송문헌 -바람의 칸타타 · 70 신갈나무 어깨 위에 눈이 내린다 무성했던 산자락에 슬몃 개옻나무 붉게 가을이 깃드나 싶었는데 내려놓은 시간의 형해들 바스락바스락 따스했던 봄날 기억들을 불러 춤을 추려는지 우르르 천둥번개 들녘이며 강 언덕 낯선 바닷가에 머물던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공기는 내 사랑 / 정진규 공기는 내 사랑 / 정진규 감자 껍질을 벗겨봐 특히 자주감자 껍질을 벗겨봐 감자의 살이 금방 보랏빛으로 멍드는 걸 보신 적 있지 속살에 공기가 닿으면 무슨 화학 변화가 아니라 공기의 속살이 보랏빛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되실 거야 감자가 온몸으로 가르쳐주지 공기는 늘 온 몸이 멍들어 있다는 걸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대추나무와 사귀다 / 김명인 대추나무와 사귀다 / 김명인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었는지 깜박깜박 기억이 헛발을 디딜 때가 잦다 어머니는 지금 망각이라는 골목에 접어드신 것이니 반지수를 이어놓아도 엉뚱한 곳에서 살다 오신 듯 한생이 뒤죽박죽이다 생사의 길 예 있어도 분간할 수 없으니 문득 얕은 꿈에서 깨..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그림자도 반쪽이다 / 유안진 그림자도 반쪽이다 / 유안진 편두통이 생기더니 한 눈만 쌍꺼풀지고 시력도 달라져 짝눈이 되었다 이명도 가려움도 한 귀에만 생기고 음식도 한쪽 어금니로만 씹어서 입꼬리도 쳐졌다 오른쪽 팔다리가 더 길어서 왼쪽 신이 더 빨리 닳는다 모로 누워야 잠이 잘 오고 그쪽 어깨와 팔이 자주 저리다 옆..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침엽의 생존방식 / 박인숙 침엽의 생존방식 / 박인숙 활엽을 꿈 꾼 시간만큼 목마름도 길어 긴 목마름의 절정에서 돋아난 가시들 침엽은 햇살도 조금 바람도 조금 마음을 말아 욕심을 줄인다 대리운전하는 내 친구 금자 밤마다 도시의 휘청임을 갈무리 하는 사이 보도 블록 위에 포장마차로 뿌리 내린 민수씨 그들은 조금 웃고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모과처럼 / 윤여홍 모과처럼 / 윤여홍 햇살도 건성으로 받아야 윤기가 난다 얼룩까지 지워지면 우리의 본색은 없는 것 서늘하게 달궈야 잘 익는 법 모과 그늘이 모과를 닮아 가고 있다 푸른 물감이 자욱하다 시고 떫은 잔광이 무게를 만들고 있다 모과가 땅으로 내리는 과단성을 40년 가까이 뜨락에서 지켜봤다 낡은 중절..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꽃에게 기도하다 / 윤여홍 꽃에게 기도하다 / 윤여홍 꽃이 저렇게 핀 것도 작년에 내가 시킨 말 때문이다 내 말에 침을 뱉고 씨처럼 흙속에 묻었던 때문이다 봄 햇살에 나의 몸살이 녹는다 열꽃이다 봄이 저절로 온 것이 아니다 분주한 세밑 별들도 나도 기다린 봄 때문에 마중하는 봄 때문에 나는 지금 머리가 맑다 몸살에 핏기..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통점을 듣다 / 김영식 통점을 듣다 / 김영식 새가 울었다, 내 안에서 어느 날 울음소린 폐에서 늑골에서 누수처럼 새어나왔다 처음 나는 그것이 새 울음인 줄 몰랐다 그저 가끔씩 찾아오는 허기거나 까닭 없는 이명이거니 했다 어쩌면 마당귀를 잠시 적시고 간 여우비거나 수숫대를 쓸고 가는 저녁의 마파람 같은 거려니 생..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아내의 빨래공식 / 이기헌 아내의 빨래공식 / 이기헌 아내의 빨래공식은 늘 일정하다 물높이 중간에 놓고 세탁 십 분 헹굼 세번 탈수 삼 분 후에 다시 헹굼 한번 그러나 간혹 공식이 파기될 때가 있다 남편 잘 둔 친구를 만났다던가 나의 시선이 그녀를 빗나갔다 싶은 날이면 아내의 빨래 법칙엔 밟아빨기가 하나 추가된다 그런 ..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
고등어 좌판 / 김종미 고등어 좌판 / 김종미 구울 거요? 지질 거요? 내려칠 칼을 든 여자와 좌판의 고등어가 두 눈 빤히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염라대왕이 이런 기분일까 네 영혼을 지글지글 구워주랴? 아니면 얼큰하게 지져서 이 지옥을 기름지게 할까 그러고 보니 내 몸이 지옥이다 이 지옥 속에 감금된 영혼을 극락에 풀어.. 다시 보고 싶은 시 200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