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붉은 골목 /조 정 붉은 골목 조 정 길을 잘못 들기는 흔한 일이어서 별 수 없이 다음골목으로 꺾어들어도 길은 이어지기 마련인데 그 골목에서 늙은 개가 내 차의 브레이크를 밟은 건 아니었고 번호 붙은 유리문들이 홍등 아래 딸 하나씩 담고 사열 중이었다 나는 남대문 시장 지하에 앉아 아무도 내가 파는 물건을 사가..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산내통신 / 김만수 詩가 있는 풍경 산내통신 김만수 그 겨울 동안 체부는 오질 않았습니다 낡은 가죽 가방의 그가 편지였던 시절도 꼴삭한 햇살과 걸쭉한 입담이 등기처럼 배달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느릅나무 이파리들 불티처럼 날리어 가고 푸른 알을 낳던 숲에는 젖은 가랑이를 말리는 감나무들 처져 섰는데 아무도 ..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보지 않고 보이는 당신 / 박진환 詩가 있는 풍경 보지 않고 보이는 당신 박진환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는 사랑합니다 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당신을 그 중 사랑합니다 볼 수 있음과 볼 수 있음을 넘어 선 곳에 있는 당신 사랑도 그와 같아서 보이면서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보임과 보이..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몽돌 / 허영미 詩가 있는 풍경 몽돌 허영미 몽돌 해변을 걷다가 얼굴 검은 사내가 히죽이며 하는 말이 - 요거 매끈한 게 잘 빠진 미스 노 얼굴 같네 - 라며 몽돌 하나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다. 몽돌이란 것이 모난 귀퉁이 썰물과 밀물에, 아픔과 세월에 깎이고 깎인 것 아니더냐..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소주병 / 공광규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 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시 읽기 ◆ 소주병은 사람들의 기쁨과..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흔들리며 흘러간다 / 최선옥 詩가 있는 풍경 흔들리며 흘러간다 최선옥 말 수 적은 강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끔씩 어깨를 들썩인다 짙푸른 산이 살며시 들어와 거꾸로 서있고 하늘도 강의 넓은 품에 안겨 속삭인다 고단한 풀들이 발을 담근 강가 포플러나무 한 그루 파르르 떨 때마다 사금파리로 반짝이는 햇빛 부스러기들 지나..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밥 / 장석주 詩가 있는 풍경 밥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물의 뼈 / 홍해리 詩가 있는 풍경 물의 뼈 홍해리 물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폭포의 흰 치맛자락 속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있다 길바닥에 던져진 바랭이나 달개비도 비가 오면 꼿꼿이 몸을 세우듯 빈자리가 다 차면 주저 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생명을 ..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고드름 / 박정원 詩가 있는 풍경 고드름 박정원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다 언제 떨어질까 .. 뉴스가 된 詩 2009.05.11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가 있는 풍경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 뉴스가 된 詩 2009.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