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몽돌
허영미
몽돌 해변을 걷다가 얼굴 검은 사내가 히죽이며 하는 말이 - 요거 매끈한 게 잘 빠진 미스 노 얼굴 같네 - 라며 몽돌 하나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다. 몽돌이란 것이 모난 귀퉁이 썰물과 밀물에, 아픔과 세월에 깎이고 깎인 것 아니더냐. 쉰 소리, 된소리, 신소리, 매운 소리, 갈기갈기 찢긴 소리, 서슬 퍼런 파도의 그 모짐도 다 받아낸 둥근 마음 아니더냐. 호계 5일 장터 난전에서 생선 파는 김씨 아지매, 배추장사 안동 댁, 멸치전의 언양 아줌마, 누런 호박 몇 덩이 따내어 와 앉은 수성 댁, 주전 몽돌해변에 가면 둥글둥글 몽돌, 이제는 초연해져 世事에 돌돌돌 매끄럽게 구르는 그 아지매들 닮았다. 꼭 닮았다.
◆ 시 읽기 ◆
시설 좋은 초대형마켓에 비하면 시골 장은 얼마나 훈훈하고 따스운지 모른다. 갖가지 펼쳐놓는 물건들을 구경하노라면 소박하고 정겨운 고향의 서정들이 새록새록 일깨워져 한없이 푸근해진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도시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경의 소리들.....
지금도 몽돌 해변 같은 재래시장 난전에는 쉰 소리, 된소리, 신소리, 매운 소리, 갈기갈기 찢긴 소리, 서슬 퍼런 파도의 그 모짐도 다 받아낸 둥근 마음들이 있다. 세파에 시달리고 시달리어 둥글둥글 둥글어진 아지매들의 빠르고 유연한 손놀림이 있다. 世事에 돌돌돌 매끄럽게 구르는 그 아지매들의 푸짐한 웃음이 있다.
몽돌해변을 걸으며 오랜 세월 썰물과 밀물에 모난 귀퉁이 깎이고 깎인 몽돌이 물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사에 부딪치는 갖가지 뾰족한 마음들을 다 내려놓게 되지 않던가?
몽돌은 사람의 넉넉하고 원만한 성품의 대표적인 비유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둥글고 원만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려움 없이 윤택한 생활에서보다는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깎여 동글동글해진 예쁜 몽돌처럼, 거친 세상사에 닦이고 닦여야 초연하고 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기축년 새해가 시작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 해도 잘 견디고 수용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서울일보[2009-01-0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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