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최선옥
말 수 적은 강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끔씩 어깨를 들썩인다
짙푸른 산이 살며시 들어와 거꾸로 서있고
하늘도 강의 넓은 품에 안겨 속삭인다
고단한 풀들이 발을 담근 강가
포플러나무 한 그루 파르르 떨 때마다
사금파리로 반짝이는 햇빛 부스러기들
지나던 흰 구름이 나뭇가지에 터억 발을 걸치고
무거운 몸 잠시 내려놓는 수면엔
지난밤 알을 깐 별들이 깨어나 반짝인다
이 순진한 풍경에 끼어든 물새가
길게 길을 내며 지나가면
산그리매 저 혼자 오래도록 흔들리고
강에는 잔잔한 바람무늬 그려진다
나도 조금씩 흔들리며 흘러간다
◆ 시 읽기 ◆
같은 사건, 같은 사실을 두고도 생각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낳게 된다는 것은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같은 풍경 앞에서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시인이 본 강의 풍경은 참 평화롭고 아름답다. 짙푸른 산과 하늘이 살며시 들어와 속삭이고, 포플러나무 한 그루 파르르 떨 때마다 강물 위로 햇빛 부스러기들 사금파리로 반짝이고, 지나던 흰 구름이 나뭇가지에 터억 발을 걸치고 무거운 몸 잠시 내려놓는 수면위로 간밤에 별이 놓고 간 알에서 다시 별이 깨어나 반짝인다고 말하는 시인의 고운 심성을 헤아려 보게 된다.
말 수 적은 강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끔씩 어깨를 들썩인다고 말하는 것은 조용하고 유순한 사람도 가끔은 마음이 울컥거린다는 말과도 통한다.
이 순진한 풍경에 끼어든 물새가 길게 길을 내며 지나가듯 평화로운 마음에 다른 무엇이 끼어들어 흔들어 놓으면 다시 고요해지기까지 아무도 몰래 오래도록 혼자서 흔들리고 끝내는 강물위의 잔잔한 바람무늬 같은 상처 자욱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조금씩 흔들리며 흘러간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흔들림일지라도 저항하지 않고. 세상의 이치와 흐름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 어떤 삶에도 나름대로의 상처와 회한이 있고, 세월에 따른 상처자국이 생기기 마련인 것이다. 아무리 순진하고 아름답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살고자 해도 세상의 흐름을 따라 흐르다 보면 저항할 수 없는 세상을 만나게 되고, 결국엔 저항할 수없는 세상의 흐름은 따라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긍정을 배우게 되는 것이리라.
결국엔 저항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와 흐름에 순응하며,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되도록 아름답게 보는 것으로 우리들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하지 않을까?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서울일보[2009-01-2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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