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고드름
박정원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다
언제 떨어질까 위태롭다고들 했지만 그런 말들을 겨냥한
소리 없는 절규였다
복수하지 마세요 그 복수의 화살이 조만간 내게로 와
다시 꽂힙니다
절 마당엔
노스님이 가리키던 동백꽃 하나 투욱, 지고
이쯤에서 풀자 내 탓이다 목이 마르다
처마 끝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를 재는 낙숫물 소리
결국엔 물이었다
한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
◆ 시 읽기 ◆
세상의 모든 관계는 소통으로 이루어지며 소통은 원활해야한다. 지독한 추위는 물의 흐름을 막고 흐름이 막힌 물은 고드름이 된다. 고드름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동안 추위는 혹독한 것이다. 위태로운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은 뾰족하고 날카로울수록 더 위태로운 법이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고드름처럼 얼지 않는 마음이 있으랴. 분하고 억울함의 농도가 짙을수록 단단해진다. 더욱이 자신이 힘없는 약자라고 느낄 때 송곳처럼 뾰족해지고, 더욱 날카로워지며 결국 절규하게 된다. 절규는 자신을 괴롭히는 회초리가 되고, 회초리로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다가 끝내는 혹독한 회한이 되는 것이다.
‘복수하지 마세요. 복수의 화살은 조만간 내게로 와 다시 꽂힙니다.‘ 그 리고 ‘결국엔 물이었다. 한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라는 귀결이다.
이는 처마 밑에 거꾸로 매달린 고드름처럼 소리 없는 절규로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던 마음도 시선을 돌리면 시들지도 않은 동백꽃이 투욱 투욱 지는 것을 보게 되고, 처마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를 재는 낙숫물소리를 듣게 되는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며, 결국엔 용서와 화해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분노도 억울함도 원한도 결국엔 거꾸로 매달려 거꾸로 볼 수밖에 없었던 내 탓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우리의 삶, 어떤 것에 분노하며 어떤 관계의 소통을 막을 것인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뾰족하고 단단한 고드름도 결국엔 물이 되고 또 애초에 물이었던 것을..........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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