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 / 박재희 공원 벤치 / 박재희 멀리서 산책을 하다가도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진다 의자에는 항상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 있다 한가한 오후 노부부가 쓸쓸함을 기대다 가고, 아이들이 실 웃음을 흘리다 가고, 그늘이 몰래 쉬었다 가고, 가끔은 석양도 붉은 하늘을 끌고 와 놀다 간다 늦가을 날 의자 위에 나뭇잎이 .. 뉴스가 된 詩 2010.02.16
둘레 / 안도현 둘레 / 안도현 이 술잔에 둘레가 없었다면…… 나는 입술을 갖다대고 술을 마실 수 없었겠지 그래, 입술에 둘레가 없었다면…… 나는 너를 사랑할 수도 없었을 테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술 마실 일도 없겠고, 술잔 속에 보름달이 뜨지도 않겠지 저 보름달에 둘레가 없었다면…… 아무도 찐빵을 만.. 뉴스가 된 詩 2010.02.11
하행(下行)/정 양 하행(下行) 정 양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깜박 잘못 들어선 하행길이다 가야 할 상행선은 차들이 잘도 달린다 빠져나갈 출구가 안 보이는 길 가다서다가다서다가다서다 하행선은 자꾸만 길이 막힌다 유턴이 안 되는 길이다 기다리지 말라 해 안에 가기는 틀렸다 기다리지 말라 너는 왜 고따우로만 사냐.. 뉴스가 된 詩 2010.02.10
유리창 닦기/이정화 유리창 닦기 이정화 얼룩진 상처가 있음으로 오늘 나의 손끝이 그에게 닿네 늘 마알가니 개어 있을 때 참 완벽한 정물이었을 뿐 없는 듯 잊혀진 정물이었을 뿐 내 사랑은 차단되어 있었다 켜켜의 앙금을 씻어낸 후 호호 따슨 입김으로 문지를 때 다시 돋는 새 살 푸른 실핏줄에 꿰비쳐 흐르는 전류 만.. 뉴스가 된 詩 2010.02.09
[시가있는아침] ‘집’ ㅡ 중앙일보 집 맹문재 자정인데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거미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미는 목욕탕 굴뚝같이 높은 방구석에 제법 집다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놀란 아내는 왜 잡을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토끼풀꽃 .. 뉴스가 된 詩 2010.02.05
봄이 없다/박승우 봄이 없다 박승우 이름도 고운 목련아파트, 13평 임대아파트에 임대된 봄이 고개를 숙이고 입주한다. 오후 세시의 아파트 놀이터, 아이들은 미끄럼틀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공사판에 나가는 김씨 아저씨 (오늘도 공치는 날일까?) 쓰레기 수거함에 빈 소주병 하나 던져 넣고 비틀거리는 시간을 시소에 .. 뉴스가 된 詩 2010.01.22
생선 씻는 여자/장정일 [장옥관의 시와 함께] 생선 씻는 여자/장정일 --> 그녀는 오래 전부터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속인 것처럼 고구려 고분벽화 속인 것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남자 것으로 보이는 바둑무늬 남방 일제시대의 몸빼 큰 엉덩이 넓은 어깨 굵은 발목 갈퀴 같은 손. 생선을 씻어.. 뉴스가 된 詩 2010.01.12
낙타/이한직 낙 타 -이한직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윈 동심의 옛 이야.. 뉴스가 된 詩 2010.01.11
달맞이꽃을 먹다니/최문자 [장옥관의 시와 함께] 달맞이꽃을 먹다니 최문자 감마리놀렌산이 혈행에 좋다고 그렇다고 그 꽃을 으깨다니 그 꽃 종자를 부수고 때리고 찢어서 캡슐 안에 처넣다니 그 피범벅 꽃을 먹고 혈관의 피가 잘 돌아가다니 욕심껏 부풀린 콜레스테롤이 그 꽃에 놀아나다니 그렇다고 나까지 하루 두 번 두 알.. 뉴스가 된 詩 2010.01.11
한여름/고두현 한여름/고두현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뉴스가 된 詩 2010.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