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 / 박재희
멀리서 산책을 하다가도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진다
의자에는 항상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 있다
한가한 오후 노부부가 쓸쓸함을 기대다 가고,
아이들이 실 웃음을 흘리다 가고,
그늘이 몰래 쉬었다 가고,
가끔은 석양도 붉은 하늘을 끌고 와 놀다 간다
늦가을 날
의자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 있다
가난한 죽음이다
죽음도 의자를 보면 쉬었다 간다
’
의자는 수성못 가에도 있고 달성공원에도 있다. 의자는 누군가 와서
앉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늘 그렇게 거기 있다.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지는 사람은 산책하는 사람, 그래서 참 넉넉한 사람이다.
시간 사냥에 바쁘고 속도와의 경쟁에 뒤질세라 여념이 없는 도시적
일상은 초록의 빈 터 같은 저 의자를 쓸쓸한 노부부에게, 석양에게,
나뭇잎에게, 죽음에게 맡겨버린 지 오래되었다. 의자를 보면 잠깐이
라도 앉았다 가자. 각박한 세상사 등짐 잠시 내려놓고 소슬한 가을
바람과 함께 쉬었다 가자. 느림의 미학만이 그대 삶을 풍요롭게 할지니!
강현국(시인`대구교대교수) 매일신문
박재희
1956년 달성군 유가면 음리에서 태어남
2000년 <대구문학>으로 등단
솔뫼문학회 동인
2007년 시집 <쟁기> 詩와 反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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