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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의 좋은 시읽기 -눈뭉치/문근영-추천(박해림)

눈뭉치 솜뭉치는 이불이되고 털실뭉치는 스웨터가 되는데 병호와 준서가 서로 던지며 싸우는 바람에 난 사고뭉치가 되었어 눈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시 읽기 잔잔한 마음을 흔들어놓는 작고도 큰 힘을 가진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단순한 것의 내밀함이란 동선이 작을수록 단단하다. 행위의 주체로부터 파생되는 부산한 행동에 있지 않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지 않다. 멀리 더 멀리 힘껏 포물선을 그릴 수도 있고, 또 그것이 되돌아올 때 아름다운 여운을 만나게 된다. 동시 「눈뭉치」는 많은 사람이 겨울이면 언제 어디서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뻔한, 뻔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 평범한 겨울 이야기가 문근영 시인에게와서는 평범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는다. 네가 경험하고 내가 경험한 익숙한..

나의 이야기 2021.05.31

문근영 시인 <촛불동화>를 읽고

문근영 시인 를 읽고 댓글 42 나의 이야기 2017. 10. 30. 문근영 시인 『촛불동화』를 읽고 / 김길순 석정문학30호에 실린 문근영 시인님의 "촛불동화"를 읽고 시 내용에서 여섯 달치 전기료 15만원을 못 낼 정도로 어려운 사정에서 화재가 났다. 새벽 다섯시면 요강을 찾는 여섯 살 어린 손주를 위해 할머니가 켜둔 촛불이 울다 잠든 아이의 헛발질에, 툭 떨어져 집은 전소되고 말았다. 불길은 검은 연기를 내뿜고 좁은 방안은 할머니와 어린 손자와 가재도구 하며 모두 사라지고 그 사건은 점차 모두의 기억에 사라졌다. 아홉평, 집이 있던 자리에는 요강처럼 움푹한 세월을 더듬으며 황량한 자리에는 빨간 사루비아가 어린 손주와 할머니의 못다한 안타까운 사정이 한이되어 촛불같이 빨간 사루비아로 피어 가을 바람에..

나의 이야기 2021.02.09

2021년 조선일보 동시 당선작 엄마의 꽃밭- 김광희

엄마의 꽃밭- 김광희 종일 튀김솥 앞에 서서 오징어 감자 튀기는 엄마 밤늦게 팔에다 생감자 발라요. 그거 왜 발라? 예뻐지려고 웃으며 돌아앉아요. 얼마나 예뻐졌을까 곤히 잠든 엄마 팔 걷어 봐요. 양팔에 피어 있는 크고 작은 꽃들 튀김기름 튄 자리마다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동생과 나를 키운 엄마의 꽃밭 팔뚝에 가만히 얼굴을 묻으면 아릿한 꽃향기에 눈이 촉촉해져요.

2021한국일보 신춘문예동시당선작 검은 고양이-최영동

검은 고양이-최영동 전봇대 밑을 두리번거리는 그림자 그 속에서 발톱이 솟아올랐다 날카롭게 가다듬은 발톱에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아 등뼈는 어제보다 하늘로 솟구치고 뱃가죽은 전단지처럼 펄럭거리네 사방에 참치 캔이 구르고 살코기가 있던 자리 혓바닥보다 콧잔등이 먼저 파고들었어 살코기 한 점 남아있지 않은 오늘 저녁 지붕 너머로 번쩍 저녁을 낚아채려는 고양이의 앞발 솟아오르는 발톱에 걸려드는 생선 꼬리 같은 골목의 불빛들

[2021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별들이 깜빡이는 이유 - 동시 박미영

별들이 깜빡이는 이유 - 박미영 하늘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 오버! 노을이 빨갛게 위험 신호를 보낸다. 저녁은 절전 모드로 진행 중 배경부터 어두컴컴하게 밝기 조절 완료 바람과 구름도 잠시 멈춤 완료 새들도 가만히 대기 모드 완료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드디어 나타났다, 오버! 별들이 깜박깜박 하늘을 충전시키고 있다.

[2021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아버지 구두-김사라

아버지 구두-김사라 새벽녘 아버지 구두가 집을 나선다 내가 잠들었을 때 나가서 잠들기 직전에야 돌아오는 구두 어떨 때는 내가 잠들고 나서 꿈속에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돌짝길 걷다 다쳤을까 옆구리가 조금 찢긴 구두 밑창은 할머니 무릎뼈처럼 닳았다 아버지 구두의 원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제 빛깔을 잃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버지 구두를 오늘은 꼭 수술대 위에 눕힌다 구두의사 면허증이 없지만 첫 수술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구두를 안았다 구둣솔로 아버지 삶에 떨어진 먼지를 턴다 우리집 앞마당까지 놀러오는 비둘기가 모이를 콕콕 찍어 먹듯 솔에 콕콕 바른 구두약으로 긴급 처방을 내린다 이제 기름칠만하면 잘 나가는 내 새 자전거처럼 아버지 구두도 막힘없이 걸어 나가겠지 아버지 삶에 윤기를 내기 위해 아버지 나이만큼 주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