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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매일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가루-정준호

[2022 매일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가루. 일러스트 전숙경 할머니는 평생 밀가루 반죽을 빚으셨어 칼국수와 수제비를 잘 만드셨지 할머니는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듯 점점 구부정해지셨어 봄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기침을 하셨어 기침 소리에 놀라 작은 꽃잎들 떨어질까 봐 조용조용 입을 가리셨어 쪼끄만 땅 짐승 놀랄까봐 발 소리를 줄이다가 점점 가벼워지셨어 작아지고 조용해지고 가벼워져서 할머니는 이제 희고 둥근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셨어 무섭지만 나도 손을 넣어 만져보았어 흰 가루가 담긴 항아리 속에서 지금도 따뜻하셨어 박수를 치면서 가루 묻은 손을 털었어 하늘에서도 반기듯 밀가루 같은 할머니 가루 같은 눈이 내렸어 펑펑 내렸어

카테고리 없음 2022.01.04

2022년 경상일보 동시 부문 당선작-비행운 - 조현미

비행운 - 조현미 비행기가 지나간다 높푸른 하늘에 밑줄 좍 ── 그으며 멀리멀리 날아간다 고추 따던 식구들도 비행기를 따라간다 할머니는 제주도 고모 집으로 외숙모는 바다 건너 베트남으로 내 마음은 말레이시아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간다 비행기는 매일매일 바다를 건너는데 높고 넓은 하늘길을 쉬지 않고 나는데 코로나 19가 바닷길을 막았다 하늘길을 막았다 식구들 마음처럼 고추는 붉게 익고 외숙모 목은 한 뼘 더 길어졌다 혼자서만 가는 게 미안했는지 비행기도 …… 말 줄임표를 남긴다 잘 지내시나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식구들 마음에 밑줄 쫙 ── 긋고 간다 ▲ 조현미 ■당선소감-조현미 / 빛의 이면, 그림자의 나날 잊지 않겠다 동심과 시심 사이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막막했고 자주 길을 잃곤 했다. 내 안의 작은..

2022년 국제신문 시조부문 당선작

어머니,MRI -이규원 미궁 속 당신의 뇌를 나는 전혀 모른다 아는 것은 낮은 코 주름진 눈 옅은 눈썹 쭈글한 얼굴이지만 팽팽했던 연륜 너머 도대체 뇌 속에 뭐가 몰래 스민걸까 보이고 싶지 않을 폐쇄성을 비춰보며 경색된 초미세 혈관 병변까지 들춰낸다 치명적인 과거는 소음 속에 분진 되고 멎을 듯한 들숨과 날숨 근육마저 경직되어 사십 분 그 시간 속이 이어질 듯 떨고있다 시상면矢狀面의 용종과 심란한 비린내 우지 마라 괘안타 살 만큼 살았으니 망望 구십, 턱 막혀버린 깊고 깊은 우물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