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 계절의 좋은 시읽기 -눈뭉치/문근영-추천(박해림)

문근영 2021. 5. 31. 01:25

눈뭉치

 

 

 

솜뭉치는 이불이되고

털실뭉치는 스웨터가 되는데

 

병호와 준서가

서로 던지며

싸우는 바람에

 

사고뭉치가 되었어

 

눈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시 읽기

 

 잔잔한 마음을 흔들어놓는 작고도 큰 힘을 가진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단순한 것의 내밀함이란 동선이 작을수록 단단하다. 행위의 주체로부터 파생되는 부산한 행동에 있지 않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지 않다. 멀리 더 멀리 힘껏 포물선을 그릴 수도 있고, 또 그것이 되돌아올 때 아름다운 여운을 만나게 된다.

 동시 「눈뭉치」는 많은 사람이 겨울이면 언제 어디서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뻔한, 뻔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 평범한 겨울 이야기가 문근영 시인에게와서는 평범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는다. 네가 경험하고 내가 경험한 익숙한 이야기를

흘러가게 놓아두지 않고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이야기로 빚어내는 솜씨는 만만하지 않다. 몇 번 반복하며 읽어도 웃음 만발하게 한다.

 

 '솜뭉치는 이불이 되고/ 털실뭉치는 스웨터가 되는데//...난/ 사고뭉치가 되었어// 눈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주 소박한 소망을 꿈꾸는 '눈뭉치'의 실망이 꼭 내가 그런 것만 같다. 어깨 토닥이며 실망하지 마, 내가 있잖아 하고 싶어진다. '병호와 준서' 가 싸우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어떡하나? 하하. 싸워서 얻어진 좋은 시 한 편을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쯤 해서 시인의 맑고 야무진 눈을 떠올려본다. 아, 그곳에 또 다른 세상이 들어있네!

 시인의 맑은 눈을 따라가면 쓰러지고 망가지고 다투는 현장이 금세 예쁘게 다듬어지고 토닥여주는 화해의 시간을 만난다. 그냥 화해가 아니다.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아둔 상처, 외면이나 힘듦의 날이 툭툭 털고 일어선다. 시인의 작은 힘이 그렇다. 크지 않아 좋다. (추천 박해림)

-시와 소금 2021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