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10 동양일보 실을 잣는 어머니 성준 내 어린 아침의 마루에서 실을 잣는 늙은 어머니. 그녀의 낡은 집 처마 빈틈 사이엔 야윈 바람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바람 줄기를 물레로 감아올렸다. 부활을 꿈꾸다 죽은 고치. 그녀의 몸에선 그 고치 냄새가 빠질 줄 몰랐다. 뜨겁게 삶아진 고..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3
[스크랩] 2010 문화일보 골목의 각질 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3
[스크랩] 2010 강원일보 산부인과 41병동에서 김현숙 목숨 걸고 터를 사수하려는 사람들과 강제 철거로 문책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불길이 솟았다 강대병원 41병동 입원실에 누운 그녀의 마음도 이미 화염에 휩싸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랑이 사이 좁고 음습하게 숨어있는 그를 찾아내 명명한 것은 D25, 2..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3
[스크랩] 2010 세계일보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권지현 '모른다고 하였다'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그림=판화가 남궁 산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3
[스크랩] 2010 전남일보 [2010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새의 낙관(落款)/정도전 새의 낙관(落款)/정도전 새들에게 있어서 낙관이라는 습관은 오래된 풍습이었다 문신을 새긴 암벽마다 둥지가 되었고 뜨뜻한 아랫목이 되었으므로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부리를 비벼 족적을 남기는 일은 축제일 수 밖에 없었..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3
[스크랩] 2010 경상일보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팝나무에 비 내리면 / 홍종권 당신은 육지를 떠나기 전이면 뒤뜰에 있는 이팝나무 아래로 불러내곤 했지요. 이팝나무 한 뼘 위를 회칼로 그으며, 그만큼 자라면 온다고 무슨 굳센 다짐처럼 말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팝나무 아래에서 키..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2
[스크랩] 2010 한국일보 [201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검은 구두 / 김성태 그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입니다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 지하철에서부터 먼 풍경을 지나 검은 양복..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2
[스크랩] 2010 경향신문 직선의 방식 카프카 이만섭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 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 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 좋으..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2
[스크랩] 2010 서울신문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시]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이길상 ■ 당선소감 - “詩가 말하지 않을 때 시가 왔다” 야구 시즌이 끝나고서야 잠자리가 사라진 걸 알았다. 인적 없는 공원. 불빛만이 맑게 새어나왔다. 내가 나를 피해 다녔으므로 바람 한 장도 햇살처럼 빛났다. 시를 쓰고 있..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2
[스크랩] 2010 동아일보 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 /유병록 딱, 뚜껑을 따듯 오리의 목을 자르자 붉은 고무 대야에 더 붉은 피가 고인다 목이 잘린 줄도 모르고 두 발이 물갈퀴를 젓는다 습관의 힘으로 버티는 고통 곧 바닥날 안간힘 오리는 고무 대야의 벽을 타고 돈다 피를 밀어내는 저 피의 힘으로 한대 오리는 구.. 다시 보고 싶은 시 201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