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을 잣는 어머니
성준
내 어린 아침의 마루에서 실을 잣는 늙은 어머니.
그녀의 낡은 집 처마 빈틈 사이엔 야윈 바람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바람 줄기를 물레로 감아올렸다.
부활을 꿈꾸다 죽은 고치.
그녀의 몸에선 그 고치 냄새가 빠질 줄 몰랐다.
뜨겁게 삶아진 고치에선 비린향이 났지만
천천히 물레가 돌때마다 바람 실이 꼬이며
뽑아지는 실 줄기에선 언제나 바람향이 났다.
늦둥이인 나는 동네 아이들의 놀림과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컸다.
어머니는 울고 들어온 어린 나에게
주름살만큼 많은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 쓰디쓴 이야기를 소화하기에 나는 아직 어렸고
실 자락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를
나는 여린 뽕잎처럼 오물거리며 잠들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어린 꿈을 품고
하나의 고치가 되어 부활을 꿈꾸며 실을 잣았다.
그날도 그녀는 마루에 앉아 종일 물레를 돌렸고
처마 밑 허공에 걸린 마른 옥수수 따위가
마른 뽕잎 부스러기처럼 떠다니는 바람에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평범한 날에 나를 떠났고
어린 나는 그런 날은 좀 더 특별하게 올 줄 알았다.
어머니는 단단한 나무 관을 고치삼아 깊은 잠에 들었다.
석양 무렵 마당에서 그녀의 옷자락을 태우자
그녀에 일생의 고치가 흐릿한 연기로 피어올랐고
연기는 짙은 밤하늘 천으로 올올이 흩어졌다.
어른이 된 석양의 끝자락에서
나는 차가운 밤의 천을 두르며 그리움의 고치를 잣는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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