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최동호] 파 할머니와 성경책 파 할머니와 성경책 최 동 호 추석 대목 지나 발걸음 한산한 돈암동 시장 골목길 느른한 정적이 감도는 하오, 검은 가죽 표지 성경책 바로 옆에 펼쳐 놓고 파뿌리처럼 쓰러져 잠든 할머니 대문짝 활자가 돋보기안경에 넘칠 만큼 가득해, 앙상한 팔다리 웅크린 할머니, 하늘의 품에 안겨, 기도하다 잠든 .. 뉴스가 된 詩 2011.05.16
[스크랩] [김수영] 적1 적1 김수영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 적에는 가벼운 적도 무거운 적도 없다 지금의 적이 제일 무거운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지만 이 적이 없으면 또 다른 적-내일 내일의 적은 오늘의 적보다 약할지 몰라도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 뉴스가 된 詩 2011.05.09
[스크랩] [함민복] 부부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 뉴스가 된 詩 2011.05.06
[스크랩] [정우영] 빨래 빨래 정우영 잔뜩 부푼 빨래들이 눈부시다. 빨래줄 잡고 나란히들 서서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햇살의 노래를 불러 대고 있다. 외출 나간 몸뚱이들이 게슴츠레 기어들기 전까지는, 저렇게 널린 채로 썽썽할 것이다. 어느 저녁 나절, 옥상에 나부끼는 빨래 보거든 못 본 체 숨죽이고 지나가라. 깨달음이 .. 뉴스가 된 詩 2011.05.01
[스크랩] [우대식]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 우대식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직선의 거리를 넘어 흔드는 손을 눈에 담고 결별의 힘으로 휘돌아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과 함께 느릿느릿 걸어왔거늘 노을 앞에서는 한 없이 빛나다가 잦아드는 강물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 뉴스가 된 詩 2011.04.29
[스크랩] [배영옥] 흔적 흔적 배영옥 동구시장 공중화장실 여닫이문에 둥근 자국이 나 있다 연두색 칠이 환하게 닳아있다 손바닥 온기와 급하게 서두르는 힘이 만든 자취, 사람들은 제 손바닥으로 그 곳을 밀고 갔을 것이다 밀어내도 밀어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닫이문은 자기도 모르게 저런 흔적을 받아 안은 것인데, 그.. 뉴스가 된 詩 2011.04.16
[스크랩] [황구하] 벚꽃 지다 벚꽃 진다 황구하 저 검은 몸속이다 하늘로 가는 길 은밀히 뚫어 놓았나 여의주 문 물고기 한 마리 지금 막 헤엄쳐 나간 게 분명하다 시리디시린 하얀 비늘들 저리 환히 쏟아지는 걸 보면 ―시집『물에 뜬 달』(시와에세이, 2011) ▶황구하 = 1965년 충남 금산 출생. 2004년 '자유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 뉴스가 된 詩 2011.04.14
[스크랩] [윤 효] 봄 봄 윤효 가랑비 몇 줄기 지나갔을 뿐인데 밑동도 채 적시지 못하고 스쳐갔을 뿐인데 나무는 가지 끝이 잔뜩 부풀었다. 그 탱탱함 어쩌지 못하고 진저리를 치고 있다. 허망타, 한철 수행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또 한 차례의 수런거림이 누리에 자욱이 번져가것다. -시집 『햇살방석』 (시학, 2008) ▶윤효=1.. 뉴스가 된 詩 2011.04.05
[스크랩] [강연호]스팀목련 스팀목련--강연호 내가 다디던 대학의 문과대 건물 옆엔 스팀 목련이 한 그루 있다 해서 진달래 개나리보다 한참은 먼저 핀다 해서 해마다 봐야지 뵈야지 겨울 난방 스팀에 쐬어 봄날인 듯 피어나는 정말 제철 모르고 어리둥절 피어나는 철부지 목련을 꼭 봐야지 벼르고 벼르다 졸업을 하고 벼르고 벼.. 뉴스가 된 詩 2011.04.02
[스크랩] [정재필] 나무의 귀 나무의 귀 정재필 우수, 경칩 지나면 나무가 귀를 연다 겨우내 빠알갛게 얼어붙었던 귀 쫑긋이 세워 열고 있다 온천천 둑길 늘어선 벚나무들 온천천 향해 가지 길게 뻗어 일제히 귀 기울이는 모습 볼 수 있다 산책길 노부부의 다정한 속삭임 자전거 타는 소년들의 해맑은 웃음 봄소식 재잘대는 냇물 소.. 뉴스가 된 詩 201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