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석정] 들길에 서서 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다 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 뉴스가 된 詩 2011.10.15
[스크랩] [김기택] 얼룩 얼룩 김기택 달팽이 지나 간 자리에 긴 분비물의 길이 나 있다 얇아서 아슬아슬한 갑각 아래 느리고 미끌미끌하고 부드러운 길 슬픔이 흘러나온 자국처럼 격렬한 욕정이 지나간 자국처럼 길은 곧 지워지고 희미한 흔적이 남는다 물렁물렁한 힘이 조금씩 제 몸을 녹이며 건조한 곳들을 적셔 길을 냈던 .. 뉴스가 된 詩 2011.10.13
[스크랩] [이정모] 운문에 들다 운문에 들다 이정모 잠자리 날개에 바장이던 햇살 은물결 위에서 날개를 털고 강물은 바람의 궁리를 받아 적는데 몸꽃 다 벗은 저 벚나무는 누굴 그려 저리 뒤척이는가 바람은 바라는 게 없어서 바람이다 사람은 살아보아야 사람이다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지 머리까지 서늘한 저 눈금 강물은 끌고 .. 뉴스가 된 詩 2011.10.07
[스크랩] [정한용] 도라지꽃 도라지꽃 정 한 용 (1958~ ) 흰 꽃이 피었습니다 보라 꽃도 덩달아 피었습니다 할미가 가꾼 손바닥만한 뒤 터에 꽃들이 화들짝 화들짝 피었습니다 몸은 땅에 묻혀 거름이 되고 하얀 옷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무더기로 손 쓸립니다 수년 전 먼저 길 떠난 내자(內子)를 여름빛 으로 만나 한참을 혼자 바라.. 뉴스가 된 詩 2011.10.06
[스크랩] [안도현] 전어속젓 전어속젓 안도현 날름날름 까불던 바다가 오목거울로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곰소만(灣)으로 가을이 왔다 전어떼가 왔다 전어는 누가 잘라 먹든 구워 먹든 상관하지 않고 몸을 다 내준 뒤에 쓰디쓴 눈송이만한 어둔 내장(內臟) 한 송이를 남겨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 사.. 뉴스가 된 詩 2011.10.05
[스크랩] [배한봉] 부지깽이꽃 부지깽이꽃 배한봉 어머니가 밥을 할 때 부지깽이에서는 꽃이 핍니다. 홍매, 목단, 칸나, 채송화, 그 붉은 웃음소리가 꽃 피우는 소리를 듣고 아궁이 속 땔감이 툭툭, 뚝딱 화답을 합니다. 무쇠솥도 따라 그르릉거리며 뜨거운 콧김을 내뿜습니다. 부지깽이에 핀 꽃이 굴뚝에 가서 안개꽃을 피웁니다. 옷.. 뉴스가 된 詩 2011.09.29
[스크랩] [여자영] 천년 수도승 천년 수도승 여 자 영(1941~ ) 하늘 문 두드리고 있다 동네 어귀에 뿌리 내린 늙은 느티나무 하나 늘 침묵의 그늘은 지나는 사람들에 등을 내주고 땀도 식혀 주었다 붙박이로 살아온 한평생 저승꽃 핀 몸속에 쇠똥구리 혹을 매달고 있다 높고 외롭고 고단했음으로 그의 자리는 오히려 눈부시다 빈 하늘 .. 뉴스가 된 詩 2011.09.26
[스크랩] [이해웅] 산골 풍경 하나 산골 풍경 하나 이해웅 지게에다 나뭇짐을 잔뜩 지고 영감이 앞서 가고 나뭇단을 인 할멈이 뒤따르고 있다 길은 가파르다 느닷없이 날아온 잠자리 한 마리가 지게 위에 앉았다 나뭇단 위에 앉았다 한다 뻘뻘 땀을 흘리는 두 늙은이와 얇은 투명 모시 같은 날개를 가진 잠자리 한 마리가 서로의 경계를 .. 뉴스가 된 詩 2011.09.21
[스크랩] [백무산] 침묵 침묵 백 무 산 나무를 보고 말을 건네지 마라 바람을 만나거든 말을 붙이지 마라 산을 만나거든 중얼거려서도 안된다 물을 만나더라도 입다물고 있으라 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 이름 없는 들꽃에 이름을 붙이지 마라 조용한 풀밭을 이름 불러 깨우지 마라 이름 모를 나비에게 이름 달지 마라 그.. 뉴스가 된 詩 2011.09.07
[스크랩] [김형영] 생명의 노래 생명의 노래 김 형 영 무심코 꽃잎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꽃잎이 오물오물 속삭이는 거예요. 뭐라고 속삭였냐구? 당신도 한 번은 들었을 텐데요. 언젠가 처음 엄마가 되어 아기와 눈을 맞췄을 때 옹알거리는 아기의 생각, 본 적 있지요? 그 기쁨은 너무 유쾌해서 말문을 열 수가 없었지.. 뉴스가 된 詩 201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