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원무현] 감자를 먹는 저녁 감자를 먹는 저녁 원무현 대처에 나간 자식들 모여서 방금 쪄낸 감자를 먹는다 둥글둥글 실한 수확물이 김을 뿜어낸다 척박한 땅이지만 올망졸망 어린 것들 더우나 추우나 내 몸인 듯 건사한 흙의 뜨거운 호흡이 백열등 불빛 아래서 꿈틀거린다 어머니가 치마를 끌어내려 정맥이 불거진 야윈 종아리.. 뉴스가 된 詩 2011.07.04
[스크랩] [황인숙]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황인숙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출처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2011.6.4) *만해의 유명한.. 뉴스가 된 詩 2011.07.02
[스크랩] [박영희] 아내의 브래지어 아내의 브래지어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 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을 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 뉴스가 된 詩 2011.07.01
[스크랩] [정윤천] 너에게 너에게 정윤천 일찍 피려고 다투지 마라 더 많이 피려고 애쓰지도 마라 높게 피어서, 우러르게 하려 하지 마라 내려다볼 때마다 꽃은 제 향기로 몸을 버틴, 여문 씨방도 보여준다. -시집『구석』(실천문학사, 2007) ▶정윤천=1960년 전남 화순 출생. 1990년 '무등일보' 등단. ** 최고 보다는 최선의 길을 가라.. 뉴스가 된 詩 2011.06.19
[스크랩] [서규정] 잘 가라 로맨스 잘 가라 로맨스 서규정 새, 가끔씩 가슴을 따주던 열쇠들이 저렇게 높이 떠 날아가선 자물통 같은 몸통을 열어주려 서로를 끌어안고 그렇게 달그락거렸던 건 외로움이 곁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 새알 하나 그것이 새털보다 많은 날들을 뒹굴고 뒤채이며 날개 짓을 했던 이유.. 뉴스가 된 詩 2011.06.19
[스크랩] [장석주] 새 새 장석주 새, 어떤 규율도 따르지 않는 무리. 새, 허공의 영재(英才)들. 새, 깃털 붙인 질항아리. 새, 작고 가벼운 혈액보관함. 새, 고양이와 바람 사이의 사생아. 새, 공중을 오가는 작은 범선. 새, 지구의 중력장을 망가뜨린 난봉꾼. 새, 떠돌이 풍각쟁이. 새, 살찐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가벼운 육.. 뉴스가 된 詩 2011.06.18
[스크랩] [김 언] 흔들 흔들 김 언 꽃들을 다 그리고도 남는 꽃들 나비가 앉았다 간 뒤에도 마저 흔들리는 나비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애벌레 기어오르다가 슬몃 흘리고 간 애벌레 바람이 핥고 가고 햇볕이 남김없이 빨아들이고도 남는 햇볕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고 떨어지는 나뭇잎; 모두가 여기 있고 아무도 밟지 않.. 뉴스가 된 詩 2011.06.06
[스크랩] [김언희] 당신이 잠든 사이 당신이 잠든 사이 김언희 당신이 잠든 사이 누군가 당신 귀를 한없이 빨다가 간다 잠든 얼굴에 즙 많은 얼굴을 부비다 간다 당신이 잠든 사이 누군가 길고 긴 혀로 당신 혀를 감았다 간다 발가락 열 개를 입에 물고 마냥 어르다 간다 당신이 잠든 사이 누군가 벌어진 입에 검은 젖꼭지를 물리다 간다 검.. 뉴스가 된 詩 2011.05.29
[스크랩] [권현형] 밥이나 먹자, 꽃아 밥이나 먹자, 꽃아 권현형 나무가 자궁을 여는 순간 뜨거운 핏덩이가 뭉클 쏟아지듯 희고 붉은 꽃떨기들이 허공을 찢으며 흘러나온다 봄 뜨락에 서서 나무와 함께 어질머리를 앓고 있는데 꽃잎 하나가 어깨를 툭 치며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만개한 꽃 속에서 듣는다 오래 전 .. 뉴스가 된 詩 2011.05.24
[스크랩] [김혜수] 가령 가령 김혜수 병원으로 들어선다는 게 그만 병원 옆 장례식장 문을 열었다 하자 어서 오십시오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반겼다 하자 놀라 얼떨결에,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하자 인사를 하고 보니 죽음이 불현듯 가까웠다 하자 들어선 김에 수의와 관을 맞추었다 하자 까짓것 내친김에 묏자리까지 알.. 뉴스가 된 詩 201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