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스크랩] [여자영] 천년 수도승

문근영 2011. 9. 26. 12:10

천년 수도승

 

  여 자 영(1941~ )

 

 

하늘 문 두드리고 있다

동네 어귀에 뿌리 내린

늙은 느티나무 하나

늘 침묵의 그늘은

지나는 사람들에 등을 내주고

땀도 식혀 주었다

붙박이로 살아온 한평생

저승꽃 핀 몸속에

쇠똥구리 혹을 매달고 있다

높고 외롭고 고단했음으로

그의 자리는

오히려 눈부시다

빈 하늘 온 세상

이고 사는

천년 수도승이여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건 나무가 긴 세월 동안 겪어낼 고통까지 달게 받겠다는

마음이다. 나무는 꼼짝 않고 한자리에 붙박여 수천의 세월을 보낸다. 곁을 지나는

누구에게라도 그늘을 내준다. 누구라도 품어 안는 데 인색하지 않다. 비바람, 눈보라

피하지 않고 말 없이 스쳐 보내야 한다. 그래서 푸른 하늘 아래 나무는 외롭고 고단하다.

희끗희끗한 저승꽃, 퉁퉁 불어터진 옹이를 잔뜩 매달고도 나무는 죽지 않는다. '백척간두

진일보' 하는 수도승의 용맹정진을 닮았다. 나무의 삶이 한없이 눈부신 까닭이다.

<고규홍 . 나무칼럼니스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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