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수도승
여 자 영(1941~ )
하늘 문 두드리고 있다
동네 어귀에 뿌리 내린
늙은 느티나무 하나
늘 침묵의 그늘은
지나는 사람들에 등을 내주고
땀도 식혀 주었다
붙박이로 살아온 한평생
저승꽃 핀 몸속에
쇠똥구리 혹을 매달고 있다
높고 외롭고 고단했음으로
그의 자리는
오히려 눈부시다
빈 하늘 온 세상
이고 사는
천년 수도승이여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건 나무가 긴 세월 동안 겪어낼 고통까지 달게 받겠다는
마음이다. 나무는 꼼짝 않고 한자리에 붙박여 수천의 세월을 보낸다. 곁을 지나는
누구에게라도 그늘을 내준다. 누구라도 품어 안는 데 인색하지 않다. 비바람, 눈보라
피하지 않고 말 없이 스쳐 보내야 한다. 그래서 푸른 하늘 아래 나무는 외롭고 고단하다.
희끗희끗한 저승꽃, 퉁퉁 불어터진 옹이를 잔뜩 매달고도 나무는 죽지 않는다. '백척간두
진일보' 하는 수도승의 용맹정진을 닮았다. 나무의 삶이 한없이 눈부신 까닭이다.
<고규홍 . 나무칼럼니스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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