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
▶함민복=1962년 충북 청주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우울씨의 1일' 등.
**
몇 해 전 주례를 좀 서주십사하고 한 제자가 찾아왔다. 이 나이에 주례는 무슨…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몇 날을 굴리고 고민하다가 이 시를 낭송해 주었더니 하객들 반응이 좋았다. 반응도 반응이었지만 이제 막 하나가 되려는 남녀에게 이보다 좋은 당부가 또 어디 있겠는가. 쉰이 다 되도록 장가도 안 가고 있는 시인이 부부관계는 어찌 이리도 빠삭한지(그래서 여직 장가를 못 간 건가?) 그런 그 시인이 얼마 전 천생의 짝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한다. 요즘 상은 잘 들고 다니는지. 긴 상 들고 부디 한 세상 잘 건너기를 봄 햇살에 기대어 축복해 본다. 고증식·시인
- 국제신문[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메모 :
'뉴스가 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최동호] 파 할머니와 성경책 (0) | 2011.05.16 |
---|---|
[스크랩] [김수영] 적1 (0) | 2011.05.09 |
[스크랩] [정우영] 빨래 (0) | 2011.05.01 |
[스크랩] [우대식]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 (0) | 2011.04.29 |
[스크랩] [배영옥] 흔적 (0) | 2011.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