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동그란 사랑 / 문근영 동그란 사랑 / 문근영 한없이 부드럽게 살고 싶다 그리움의 온기로 빨갛게 달아오른 동그란 사랑 바삭바삭 맛있게 굽고 싶다 삐뚤지 않고 모나지 않게 삶의 모서리에 어느 곳 하나 상처 나지 않게 어디를 가든 한 바퀴만 굴러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내 중심에서 늘 그대라는 제자.. 나의시 2011.11.06
[스크랩] 물의 뼈 / 문근영 물의 뼈 / 문근영 수증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제 살을 찢어 눈물을 뿌리는 저 안개구름으로부터 투명한 물의 눈동자로부터 시작되었다 허공의 방, 갈라진 벽 사이로 모서리 공글리며 내려온 물방울이 물의 혈관 따라 흐르다가 영하의 입김에 희고 단단한 뼈대를 세운다 서로 부둥켜안고 몸집을 부풀리.. 나의시 2011.10.22
삼겹살을 구우며 / 문근영 삼겹살을 구우며 / 문근영 숯불의 씨를 살려 -삼-겹-살을 굽는다 벌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숯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마지막까지 남은 온기로 살을 태우는 모습이 소신공양으로 입적하는 낯익은 다비식 같아 허기를 빙자한 서민들의 조문이 끊이질 않는다 지글지글 고소하게 구워지는 -삼-겹-살 한 끼.. 나의시 2011.09.28
[스크랩] 덫 / 문근영 덫 / 문근영 제 몸 찢어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 투명 실 뽑아 나선형으로 끈끈하게 짜 올린 하늘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방은 단잠의 꿈을 꾸는 보금자리였을 터인데 아침 햇살을 받아 유난히 눈부시다 그 방 훔쳐보다 딱 걸린 저 날개들 새파랗게 질려 입술 떨리고 빠져나오려고 집 한 채를 흔들어보아.. 나의시 2011.09.24
[스크랩] 자전거를 배우며 / 문근영 자전거를 배우며 / 문근영 담벼락을 버팀목 삼아 안장에 올라앉아 엉덩이를 갸우뚱거리지만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아 헛발질만 한다 고개 숙인 핸들을 좌우로 비틀자 삐걱삐걱 울음을 뱉어낸다 똑바로 서기 위해 아등바등 애써보지만 몸과 마음이 엇박자로 놀아 방향을 잡지 못하고 달리다가 절망 쪽으.. 나의시 2011.09.21
[스크랩] 청계천 (청계시화작품전 출품작) 청계천 (청계시화작품전 출품작) 문근영 시인 어둠도 고비에 차면 스스로 빛을 잉태하고 첫새벽을 깨쳐오는 걸까 찬바람 매서운 천변, 등이 휘도록 가난한 어제를 짊어지고 갇혀서 서성이던 세상의 한쪽 귀퉁이 잿빛 하늘이 허물다가 만 기둥 사이로 죽어가는 물비린내가 풍겨 올라와 목구멍에 역류.. 나의시 2011.09.19
[스크랩] 오징어 / 문근영 오징어 / 문근영 밤새도록 뒤척이던 포구에 초롱초롱 불 밝히며 돌아온 고깃배 한 척 바다를 잔뜩 풀어놓으면 먹물 내뿜으며 파랑 지는 물살 헤쳐오던 소리 또렷이 듣고 싶어 우리는 귀 세우고 모래성을 쌓고 있었지 갈매기가 물고 온 수평선에 웅크린 몸과 입술, 쫙 펴질 때까지 걸어두고 우리는 마른.. 나의시 2011.09.09
[스크랩] 쉰을 가다 / 문근영 쉰을 가다 / 문근영 잠시 쉰 사이 눈가에 내려앉은 주름 몇 가닥, 한쪽으로 기울어져 오십견 걸린 어깨, 굴곡의 깊이 헤아려보면 눈물 시린 세월, 살아온 날만큼 고단하다 침침하여 보이지 않는 길 더듬다 보니 반으로 접힌 생의 허리 어긋나 삐걱거리는 뼈마디 욱신욱신 쑤신다 세상 먼 바깥쪽을 캄캄.. 나의시 2011.07.30
[스크랩] 상사화 2 / 문근영 상사화 2 / 문근영 상처가 덧니로 돋아난다 서로 다른 음자리표에서 우리는 오선지 위를 슬픈 음표로 가득 메운다 불협화음의 음정 잠시 쉼표 앞에서 한숨을 고른다 못갖춘마디의 설렘도 되돌이표의 기대도 없이 다 잊었던 당신. 음표들이 사라진 자리에 입술 찢으며 붉은 혓바늘로 돋고 있다 나의시 2011.06.22
[스크랩] 상사화 / 문근영 상사화 / 문근영 상처가 덧니처럼 돋아난다. 때론 운명처럼 우리는 그 아픔의 뿌리에 닿는다 엇갈린 인연의 굴레. 허망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눈과 코를 없애고 끝내 혀마저 지웠는데, 다 잊었던 당신, 그리움 멍울진 자리에서 입술 찢기듯 붉은 혓바늘로 돋고 있다 나의시 201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