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삼겹살을 구우며 / 문근영

문근영 2011. 9. 28. 21:03

삼겹살을 구우며 / 문근영

 

 

숯불의 씨를 살려 -삼-겹-살을 굽는다

벌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숯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마지막까지 남은 온기로 살을 태우는 모습이

소신공양으로 입적하는 낯익은 다비식 같아

허기를 빙자한 서민들의 조문이 끊이질 않는다

지글지글 고소하게 구워지는 -삼-겹-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삶을 다하고 제 육신을

보시하는 돼지의 일생이 삶의 경전 같아

내 욕심 채우는 데 급급해 이웃이 상처받는 것에

무감각했던 비겁함 때문이었던지 매운 연기가

자꾸 내게로 몰려와 눈물이 난다

저녁노을이 발아래로 진다

너울너울 지친 혀들이 저녁놀에 잠겨 일렁인다

석쇠 위에 남겨진 마지막 유언 앞에 마음 한쪽

조등을 달고 소주 한잔 곁들이며 속내를 나누다 보면

발그레 이슬 맺힌 눈망울들

유난히 얇아진 호주머니에 삶이 힘들고 버거워도

켜켜이 쌓였던 마음의 번뇌 녹아내리고

-삼-겹-살 연한 지층에 박힌 오돌 뼈 화석처럼

입가에 하얀 미소 환하게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