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 문근영
제 몸 찢어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
투명 실 뽑아 나선형으로 끈끈하게 짜 올린
하늘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방은
단잠의 꿈을 꾸는 보금자리였을 터인데
아침 햇살을 받아 유난히 눈부시다
그 방 훔쳐보다 딱 걸린 저 날개들
새파랗게 질려 입술 떨리고
빠져나오려고 집 한 채를 흔들어보아도
더욱 강하게 삶을 옭아맨다
마지막 날갯짓과 함께 흔들리며 때를 엿보던
암거미 한 마리
허기의 힘으로 생을 집어삼킨다
어둠을 끌고 와 단단한 기둥에 묶어놓고
무덤 같은 그물코에 전 생애를 매달고
깊은 잠을 눕히는 그녀
사랑이란 제 속을 다 퍼주는 것이라는 듯
새끼들을 품 안에 품고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준다
속 빈 껍질만 남은 그녀
몇 가닥 줄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출처 : 월간 한국문단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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