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스크랩] 오징어 / 문근영

문근영 2011. 9. 9. 12:00

오징어 / 문근영

 

 

밤새도록 뒤척이던 포구에

초롱초롱 불 밝히며 돌아온 고깃배 한 척

바다를 잔뜩 풀어놓으면

먹물 내뿜으며 파랑 지는 물살 헤쳐오던 소리

또렷이 듣고 싶어

우리는 귀 세우고 모래성을 쌓고 있었지

 

갈매기가 물고 온 수평선에

웅크린 몸과 입술, 쫙 펴질 때까지 걸어두고

우리는 마른 빨판처럼 굴러다니며

열아홉 살을 질겅질겅 씹어먹었지만

 

몇몇은 질퍽거리는 바닥에 눌러앉아

구멍 난 주머니를 메우며

짭조름한 가난을 벗겨 먹었지만

한 끼의 허기 달래기 위해 입술을 오물거리며 바라보던

 

하얀 분을 바른 오징어

아침 햇살이 입 맞춰주고 정오의 바람이 얼러주고 

속살 불그레 익은 노을이 쓰다듬어

다정하게 줄지어 흔들릴 때

 

미역, 다시마, 파래, 김, 우뭇가사리, 퉁퉁마디

바다향기 솔솔 뿌려 주문을 걸면

내 안의 바다에도 파도가 살아

하나 둘 집어등 불 밝히며

바다를 통째로 구워먹고 싶던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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