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 문근영
밤새도록 뒤척이던 포구에
초롱초롱 불 밝히며 돌아온 고깃배 한 척
바다를 잔뜩 풀어놓으면
먹물 내뿜으며 파랑 지는 물살 헤쳐오던 소리
또렷이 듣고 싶어
우리는 귀 세우고 모래성을 쌓고 있었지
갈매기가 물고 온 수평선에
웅크린 몸과 입술, 쫙 펴질 때까지 걸어두고
우리는 마른 빨판처럼 굴러다니며
열아홉 살을 질겅질겅 씹어먹었지만
몇몇은 질퍽거리는 바닥에 눌러앉아
구멍 난 주머니를 메우며
짭조름한 가난을 벗겨 먹었지만
한 끼의 허기 달래기 위해 입술을 오물거리며 바라보던
하얀 분을 바른 오징어
아침 햇살이 입 맞춰주고 정오의 바람이 얼러주고
속살 불그레 익은 노을이 쓰다듬어
다정하게 줄지어 흔들릴 때
미역, 다시마, 파래, 김, 우뭇가사리, 퉁퉁마디
바다향기 솔솔 뿌려 주문을 걸면
내 안의 바다에도 파도가 살아
하나 둘 집어등 불 밝히며
바다를 통째로 구워먹고 싶던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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