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청계시화작품전 출품작)
문근영 시인
어둠도 고비에 차면
스스로 빛을 잉태하고 첫새벽을 깨쳐오는 걸까
찬바람 매서운 천변,
등이 휘도록 가난한 어제를 짊어지고
갇혀서 서성이던 세상의 한쪽 귀퉁이
잿빛 하늘이 허물다가 만 기둥 사이로
죽어가는 물비린내가 풍겨 올라와 목구멍에 역류했다
고층 빌딩 숲 사이로 해가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고
허리가 굽고 검버섯 돋은 천변은 해묵은 중태에 빠졌다
하늘땅 받들어 소박한 정 나누며 사랑이 넘쳐나던 옛 정취
종이배로 구겨져 함부로 나뒹구는데
어둠이 올 때마다 어김없이 깨어나는 짙푸른 통증들
은비늘 같은 물결들이 잘박잘박 맨발로 다독여준다
상처가 아닌 회복으로,
다시 새로운 관계를 꿈꾸며 되살아나는 푸른 물줄기
속내 깊은 개천은 모든 허물을 잠자코 쓸어주며
휘파람 풀리는 물소리 따라 낡은 달력을 흘려보낸다
새끼들 거느리고 자맥질하는 청둥오리들,
물풀들, 둥지를 트는 야생의 새들,
속살 훤한 은빛 피라미들 떼 지어 돌아 온
밤 깊은 청계천의 맑은 물속으로
이제 막 눈을 뜬 어린 별빛들이
역사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며 뛰어들고 있다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메모 :
'나의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덫 / 문근영 (0) | 2011.09.24 |
---|---|
[스크랩] 자전거를 배우며 / 문근영 (0) | 2011.09.21 |
[스크랩] 오징어 / 문근영 (0) | 2011.09.09 |
[스크랩] 쉰을 가다 / 문근영 (0) | 2011.07.30 |
[스크랩] 상사화 2 / 문근영 (0) | 2011.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