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poet

호두 엄마, 딸기 엄마 문근영 호두 엄마가 하는 일 딱딱한 껍질 속에 꼭꼭 씨앗을 숨기는 일 딸기 엄마가 하는 일 드러내 놓고 콕콕 씨앗 박아놓는 일 엄마 마음은 같은데 하나는 숨기고 다른 하나는 드러내고 -《시와소금》 (2023 봄호) 좋아요 댓글 달기 공유하기

아찔한 저 높이를 건너뛰면 그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붉은 벽돌을 층계처럼 오르는 성당 외벽 담쟁이에게 엿보고 싶은 오색유리 안쪽은 성지다 체액은 끈끈해서 첨탑의 시간을 동여매지만 펼친 부채로 흔드는 잎들은 흔들리는 기도에 닿는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움을 흔드는 것 여명의 눈망울쯤에 닿는 끈끈한 발바닥 같은 것 수천 잎들의 포옹에는 구멍 숭숭한 고해성사도 있어 그날의 수직 파문을 땅속뿌리로 받아낸다 궂은 날 피뢰침처럼 다 같이 잘 살아간다는 의미의 상생相生은 담쟁이덩굴과 같다. 가지에 난 덩굴손 수십 개로 바위나 나무, 건축물들에 자라면서 겨울에는 건물 보온 효과와 여름철 냉각 효과로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 오색유리 안쪽이 성지가 되듯이, 시인은 말한다. "한 편의 좋은 시를 내놓기 위해서는 무릇 생명..

거울은 내가 왼쪽 눈 감으면 저는 오른쪽 눈 감고 내가 왼손 들면 저는 오른손 든다 몸치인가 보다 만날 따라 하면서도 꼭 반대로 하는 걸 보면

태풍의 눈 / 문근영 몰래 버린 빨대, 비닐봉지, 캔, 페트병, 스티로폼…… 태풍 휩쓸고 간 바닷가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 속속들이 찾아낸 태풍의 눈 참 밝다

줄다리기 문근영 모든 경기는 앞으로 나가야 이기는데 뒤로 물러서야 인긴다 으라차차! 벌렁 나자빠 지고도 통쾌하게 이긴다 ㅡ『동시 먹는 달팽이』 (2022, 봄호)

무화과나무 도깨비는 혹부리 영감보다 무화과나무가 열 배는 더 욕심이 많은 줄 알았나 보다 꽃도 안 핀 가지마다 이렇게 많은 혹을 뚝딱! 달아 놓았네

맨드라미는 문근영 캉캉 춤을 추려고 그러니? 꼬불꼬불 주름 잡으며 층층 레이스 달며 맨들맨들 치마를 맨들었네 맨드라미야 흔들흔들 치마만 흔들면 어쩌니? 캉캉 춤을 추려면 치맛자락 추켜올리고 다리를 캉캉 차올려야지 -《아동문학평론》, 2022 봄호

횡단보도 -문근영 作 피아노 건반 같다 휴대폰 배터리 방전되듯 신호등 초록 눈금 다 떨어지기 전에 도레미파솔라시도 이쪽에서 밟고 가고 도시라솔파미레도 저쪽에서도 밟고 온다

돌부리 -문근영 돌에도 부리가 있네 새처럼 부리가 있네 새들은 노래하는데 입도 벙긋 못하네 그래서 그런지 심술이 잔뜩 났다 보네 느닷없이 발을 걸어 나를 넘어뜨리네

눈뭉치 문근영 솜뭉치는 이불이되고 털실뭉치는 스웨터가 되는데 병호와 준서가 서로 던지며 싸우는 바람에 난 사고뭉치가 되었어 눈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계간『詩하늘 102』(2021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