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팽이 / 문근영 팽이 / 문근영 팽그르르 돌 때마다 고만고만한 시선들 발끝에 모이고 마음의 귀 닫혔다 열린다 꽃이랄 수도 춤이랄 수도 있는 몸짓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마냥 즐겁다 흐린 기억 저편 무지개를 쏟아내며 유년의 자화상이 강추위로 불어오면 때리면 때릴수록 장딴지에 알이 배여 중심을 더 똑바로 잡게.. 나의시 2011.06.03
[스크랩] 골무 / 문근영 골무 / 문근영 장롱 한켠 손때로 윤나는 반짇고리에서 또르르 굴러떨어진 잿빛으로 퇴색한 골무 하나 눈 마주친다 바래진 자국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땀 한 땀 실 바늘 지나간 자리마다 뻣뻣한 세상 무수히 찔렀을 저 바늘 끝, 뒤로한 채 생이 저물도록 삐져나오는 자식들 세상 모서리 안으로 밀어 넣.. 나의시 2011.05.28
[스크랩] 숨바꼭질 / 문근영 숨바꼭질 / 문근영 매섭고 모질게 불어대던 꽃샘바람이 끈질기게 훼방 놓으며 심술부리다가 찢어진 눈 실룩거리며 집 나가던 날 숲 속 마을엔 그늘을 찾아 몸을 의탁하던 잔설과 발밑에서 머뭇거리던 낙엽이 새침데기 황사 바람을 불러내 구석구석 기웃거리며 술래잡기가 한창이다 술래의 눈동자를 .. 나의시 2011.05.05
[스크랩] 물 수제비, 날다 / 문근영 물 수제비, 날다 / 문근영 뜨거운 위로가 필요한 날은 물 수제비 뜬다 손안에 꼬옥 들어오는 납작하고 둥근 돌을 주워 멈춘 듯 고요한 적막의 한복판에 허리를 낮추고 힘껏 던지면 푸른 수면이 미끄러운 듯 잔물결 일으키며 물의 심장이 통,통,통 튄다 물결의 흔들림으로 둥글게 몸을 부풀리는 꽃잎 짧.. 나의시 2011.05.01
[스크랩] 저울 / 문근영 저울 / 문근영 함량 미달인 나를 저울 위에 올려본다 천근만근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흔들리는 눈금들 중심점을 잃은 치우침이 한쪽으로 무겁게 기우는데 발의 지문이 남긴 욕망의 몸무게는 무거운 일상의 바퀴살에 끼여 부풀려지기도 하지만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내 안의 부끄러운 마음의 무게는 텅.. 나의시 2011.04.13
[스크랩] 상처의 풍경 / 문근영 상처의 풍경 / 문근영 실핏줄 엉킨 골목 사이사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붕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둘러앉아 스며드는 불빛에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헐거운 창문과 욕망이 배인 담벼락은 금이 가고 금간쪽으로 포클레인이 입 쫙 벌리고 할퀴고 간 자리엔 떨어져 나간 난간과 건물의 뼈가 휘어.. 나의시 2011.04.07
[스크랩] 몽당연필 / 문근영 몽당연필 / 문근영 초라한 양철 필통 속에서 심이 뚝 부러진 채 발을 포개고 누운 몽당연필들을 본다 한 겹씩 향나무의 속살 벗길 때마다 또르르 말려 떨어지는 향기, 까맣게 묻어나고 한 벌의 누더기 같은 세월, 갈고 다듬으면 몸속의 중심 감출 도리가 없다는 듯 무뎌진 연필의 뼈가 아픔 끝에 살아난.. 나의시 2011.03.23
[스크랩] 안개 속에서 / 문근영 안개 속에서 / 문근영 입김이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싸한 향기 때문에 콜록콜록 기침은 심해지고 목 쉰 바람은 시간의 바퀴를 헛돌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하늘은 온통 먹통이고 뭔가 비밀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감춰진 곳에서 나는 잠시 길을 잃고 서성이고 있다 그림으로 버티고 서 있던 .. 나의시 2011.03.16
[스크랩] 새벽, 인력시장에서 / 문근영 새벽, 인력시장에서 / 문근영 새벽잠을 토막 내며 집을 나서야 할 이른 아침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는 골이 깊다 빙하기 같은 혹독한 불황의 칼바람 앞에 모여드는 가난들 모닥불 지펴놓고 웅크리고 앉아 언 손 녹이며 차례를 기다린다 구인차량이 올 때마다 일대가 왁자지껄해지고 시간이 흘러 인력시.. 나의시 2011.03.05
[스크랩] 복어 / 문근영 복어 / 문근영 독처럼 치명적 그리움이 푸르게 돋는 시간 울창한 해초림 사이를 헤매며 어둠을 밀어내고 밤을 지새웠을 어린 복어 한 마리를 생각한다 유년을 꼬투리 잡고 제 몸 안에 독을 숨긴 채 심연을 떠돌 수밖에 없는 슬픈 배회 마치 터질 것 같이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까닭은 아픔보다 더 깊은 .. 나의시 201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