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박형권 시집 『우두커니』- 우두커니 외 2편 우두커니 (외 2편) 박형권 겨울 상추 좀 먹어야겠다고 지푸라기를 덮어둔 산 아래 밭에 상추 어루만지러 어머니 가시고 빵 딸기우유 사서 뒤따라 어머니 밟으신 길 어루만지며 가는데 농부 하나 밭둑에 우두커니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밭 하염없이 보고 있다 머리 위로 까치 지나가다 똥..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고귀한 유산 외 2편 고귀한 유산 (외 2편) 송경동 내가 죽어서라도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며 내어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노동자들이 목숨을 놓을 때마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보수언론들이 이야기한다 천상 호수 티티카카 호까지 가는 페루의 고산 열차는 1870년 착공해 삼십팔 년이 걸렸..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고영민 시집 『사슴 공원에서』- 극치 외 2편 극치 (외 2편) 고영민 개미가 흙을 물어와 하루종일 둑방을 쌓는 것 금낭화 핀 마당가에 비스듬히 서보는 것 소가 제 자리의 띠풀을 모두 먹어 길게 몇번을 우는 것 작은 다락방에 쥐가 끓는 것 늙은 소나무 밑에 마른 솔잎이 층층 녹슨 머리핀처럼 노랗게 쌓여 있는 것 마당에 한 무리 잠..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허 연 시집『오십 미터』- 오십 미터 외 2편 오십 미터 (외 2편) 허 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박성준 시집『잘 모르는 사이』- 건강한 질문 외 2편 건강한 질문 (외 2편) 박성준 약국을 다녀온 뒤로 대낮에도 불을 켜고 삽니다 대문을 초록으로 칠했지만 좀체 좁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국물을 낸 멸치들은 버려집니다 액자를 떼어낸 자리처럼, 사는 동안의 냄새는 감출 수가 없는 법입니다 기념이 되는 일들은, 전원도 켜지 않은 텔..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유현숙 시집 『외치의 혀』- 외치 외 2편 외치 (외 2편) 유현숙 1 청동도끼와 돌촉을 멘 남자가 집을 나섰다 협곡으로 들어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침엽수림 아래에서 목 긴 짐승이 오래 우는 밤 나는 숨죽이고 불면했다 터진 손으로 부싯돌을 치는 동안 지축이 기울었고 나무는 뿌리째 뽑혔고 눈 속에 파묻혔던 남자가 게놈분..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정영숙 시집 『볼레로, 장미빛 문장』- 볼레로, 장미빛 문장 외 1편 볼레로, 장미빛 문장 (외 1편) 정영숙 1 오르간 소리에 끌려 새잎 돋아나듯 여린 목소리로 계집아이에게 다가오던 발자국 소리 그렇게 소년은 긴 복도를 지나 태초의 울림처럼 그녀에게 왔다 순간 유리창을 튀어오르던 여름 햇살, 창문을 타고 학교 지붕 위로 다람쥐처럼 기어오르던 붉은 ..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오늘의 특선 요리 외 2편 오늘의 특선 요리 (외 2편) 김기택 높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다니는 독수리 날개의 넓고 튼튼한 부력만을 골라 냉장 숙성시킨 후에 구웠습니다. 하루 중 가장 차갑고 맑은 시간에 터져 나오는 새벽닭의 힘찬 울음만을 엄선하여 바삭바삭하게 튀겼습니다. 시속 111킬로미터로 달리는 치타의..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박형권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 육점 여사의 고기천국 외 2편 육점 여사의 고기천국 (외 2편) 박형권 골목 안 사거리에 천국이 있다 살점 한 덩이에서 '정태춘'이 흐르고 육점 여사의 육절기는 윙 윙 윙 빈 CD처럼 돈다 두어근 늦여름을 끊어가려고 고기천국으로 들어서서 골목 사람들의 허기를 경청하는데 한 사람 들어와 누군가의 이름을 아름다이 ..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최명란 시집 『이별의 메뉴』- 이별의 메뉴 외 2편 이별의 메뉴(외 2편) 최명란 죽은 내가 또 죽었다 어젯밤 꿈속에서 분명 내가 죽은 것을 보았다 내 주검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아쉬운 이별 아픈 이별 서러운 이별 미안한 이별 놀라운 이별 안타까운 이별 이별이 어떤 것이든 꿈보다 강렬하고 때때로 또렷하다 내가 죽어 내가 운다 .. 좋은시 2018.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