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윤학 시집 『짙은 백야』- 누옥의 방 한 칸 외 1편 누옥의 방 한 칸 (외 1편) 이윤학 화단을 지키는 고양이 밥그릇에다 성견 사료 한 알 한 알 떨어뜨려줬더니 골이 났는지 눈길도 주지 않더라 마름모꼴 방 끝의 티브이를 켰더니 화면 중심으로 불 꺼진 성냥골이 쏜살같이 떨어지더라 모자를 쓰지 않았는데 모자를 쓴 것 같은 느낌이 찾아올 ..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이은봉 시집『봄바람, 은여우』- 봄바람, 은여우 외 2편 봄바람, 은여우 (외 2편) 이은봉 봄바람은 은여우다 부르지 않아도 저 스스로 달려와 산언덕 위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은여우의 뒷덜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두 다리 자꾸 후들거린다 온몸에서 살비듬 떨어져 내린다 햇볕 환하고 겉옷 가벼워질수록 산언덕 위 더욱 까불대는 은여우 손가락 ..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문현미 시집 『깊고 푸른 섬』- 깊고 푸른 섬 외 1편 깊고 푸른 섬 (외 1편) 문현미 한 순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거나 사랑이라는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뇌관을 수직으로 전율하게 하는 것이 있다 뜨거운 내면의 힘으로 꾸욱 눌러 쓰는 손의 근육으로 하얀 묵음의 바다에서 무채색 노를 저어 그 섬으로 간다 그 섬으로 간다 아무도 방해..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김민정 시집 『아름답고 쓸모 없기를』-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외 2편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외 2편) 김민정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야호 하고 만세를 부르는 돌..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려 원 시집 『꽃들이 꺼지는 순간』- 꽃들이 꺼지는 순간 외 1편 꽃들이 꺼지는 순간 (외 1편) ​ ​려 원 툭 하고 꺼졌다 아버지는 캄캄한 방을 흔들어 촬촬 소리가 나면 불꽃이 수명이 다한 거라 했다 할머니에게 주려고 동백을 돌려 땄다 그때 퍽, 봄이 꺼졌다 알을 빻은 동백을 삼베주머니에 넣고 쥐어짜던 두 손 사이로 부드러운 머리카락..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강경호 시집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외 1편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외 1편) 강경호 한 줄의 시도 못 쓰고 있을 때 길을 잘못 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 한 마리 날아들었다 놀란 새는 내 관념의 이마를 쪼다가 출구를 찾으려 발버둥 쳤다 책에 부딪혀 깃이 빠지고 상처를 입은 새를 바라보는 동안 고통스러웠다 새는, 이 따위 답답한 ..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한이나 시집 『유리 자화상』- 모래여자 박물관 외 1편 모래여자 박물관 (외 1편) 한이나 악기 박물관의, 가슴뼈에서 꺼낸 물감상자들 흐린 얼굴로 심금을 긁는 극저음의 첼로 파란을 가라앉히며 저녁 길을 떠메고 가는 콘트라베이스 물밑 모래 우는 소리를 밟고 낮게 길 떠나는 피콜로 수백 년 물굽이를 놓치고 이으며 서쪽으로 가는 오보에 ..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오탁번 시집 『시집보내다』 - 문학동네-시집보내다 시집보내다 오탁번 새 시집을 내고 나면 시집 발송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속표지에 아무개 님 청람(淸覽), 혜존(惠存), 소납(笑納) 반듯하게 쓰고 서명을 한다 주소와 우편번호 일일이 찾아 쓰고 튼튼하게 테이프로 봉해서 길 건너 우체국까지..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유안진 시집 『숙맥노트』- 충만의 조건들 외 1편 충만의 조건들 (외 1편) 유안진 깜부기도 드문드문 도꼬마리 달개비도 섞였네 쥐도 뱀도 개구리 두꺼비도 들락거리네 숨었던가 새들도 날아오르네 꺾이고 쓰러진 보리대궁 사이사이 지나가는 댓바람이, 지나가는 들쥐가, 붙잡는 도꼬마리가 보릿대를 짓밟아, 꺾기도 하고 붙잡아 세우기.. 좋은시 2018.12.20
[스크랩] 이상국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외 3편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외 3편) 이상국 나 어렸을 적 보름이나 되어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에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 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시고는 했는데, 달이 너무 무거워 하늘의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다는 것인지 혹은 당신의 가슴이 미어터지도.. 좋은시 2018.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