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외 1편)
강경호
한 줄의 시도 못 쓰고 있을 때
길을 잘못 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 한 마리 날아들었다
놀란 새는 내 관념의 이마를 쪼다가
출구를 찾으려 발버둥 쳤다
책에 부딪혀 깃이 빠지고 상처를 입은
새를 바라보는 동안 고통스러웠다
새는, 이 따위 답답한 서재에서는 못 살아 하며
푸른 하늘과 숲을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나가지 못했다
두렵고 궁금하고 불량하고 불온하고 전투적인
피투성이가 된 새를 바라보는 동안
나도 피투성이가 되었다
새가 소설집에 부딪치고, 시집에 부딪치고
진화론에 부딪치고, 창조론에 부딪치는 동안
산탄처럼 무수히 많은 새끼를 낳았다
새는 겨우 출구를 찾아 날아가 버렸지만
새가 낳은 수많은 새끼들
내 마음의 서재에 살게 되었다
또다시 잘못 든 새가 그립다
허물
햇볕 속에서
허물을 벗는 뱀을 본 적 있다
아주 천천히 제 살을 찢을 때
두꺼비 한 마리 나타나
뱀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늘 아래에서
허물을 벗는 매미를 본 적이 있다
맞지 않은 옷 벗고 젖은 날개를 말릴 때
사마귀 한 마리 나타나
매미의 목을 물었다
허물을 벗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들,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만나기 위해
제 일생을 내놓기도 하지만,
사람은 허물을 벗지 못한다.
더러운 피 씻기 위해 날마다 비누칠을 하지만
가짜를 벗겨내지 못하고
나무들이 허물을 벗고 온몸으로 겨울바람에 맞설 때
사람은 두꺼운 탐욕의 옷을 입는다.
—시집『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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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호 / 1958년 전남 함평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언제나 그리운 메아리』『알타미라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사람』『함부로 성호를 긋다』『휘파람을 부는 개』『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연구서 『최석두 시 연구』. 문학평론집『휴머니즘 구현의 미학』. 미술평론집『영혼과 형식』『미술과 문학의 만남』등. 현재《시와 사람》발행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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