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들으면 들을수록 비위가 상하고 억지스런 느낌을 주는 말 가운데 하나가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경제용어다. 경기침체와 불황으로 생산이나 소득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드는 것을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기묘한 말로 표현하는 모양인데, 이른바 전문가들의 말장난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마이너스 성장’(?), 여성을 비(非)남성으로 부르는 격 이 용어는 모름지기 경제란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전진과 성장은 긍정적인 플러스의 개념이고 후퇴나 축소는 부정적인 마이너스의 개념으로 보고, 성장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즉, 경제 후퇴나 경제 축소를 ‘마이너스 성장’으로 부름으로써 경제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시켜 버리려는 통제와 금지의 언어이다.
그래서 경제관료들의 사전에는 ‘성장’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마치 세상의 모든 인간을 남성을 기준으로 분류하여, 남성은 그냥 남성이고 여성은 비(非)남성으로 부르는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좋아졌네 좋아졌네 몰라보게 좋아졌네”만 노래하다보니 “나빠졌네 나빠졌네”는 금기어가 되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는 ‘불신풍조 조장’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던 시대의 살벌하고 폭력적인 사고방식을 나는 이 용어에서 발견한다.
이것은 또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우리 경제는 계속 성장해 왔으므로 앞으로도 무한히 성장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확신을 전제로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을 세상의 유일한 강으로 알고 모든 강은 당연히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했으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을 보고는 ‘강물이 거꾸로 흐른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처럼 경제 성장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경제 성장이 될수록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가치로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경제 성장을 해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그래야만 더 행복하고 신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다.
국가신인도, 청렴도, 행복지수, 인권지표 등엔 왜 무관심할까? 그러나 과연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는 성장하고 인간은 더욱 더 행복해졌을까?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들보다 더 현명하고 똑똑해졌을까? 우리는 그리스인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고려시대보다 자주국방이 강화되고 사대주의는 약화되었을까? 조선시대보다 사회적 약자와 지역경제에 대한 배려는 나아졌을까? 일제시대보다 민족적 일체감과 공동체의식은 더 강화되었을까? 그리고 1960년대보다 더 청정한 환경에서 언론의 자유를 더 많이 누리고 있을까? 농촌은 1970년대와 80년대의 새마을운동 이후 더 살기 좋아졌을까?
내가 궁금한 이런 쪽의 통계나 수치는 국책연구소나 대학에서 잘 연구하지 않고, 정치인이나 관료들과 언론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국가신인도나 공무원의 청렴도, 행복지수, 인권지표들은 왜 경제성장률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홍보되지 않는 것일까? 혹시 이런 지표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이런 지표들은 민생과 직접 관련이 없고 적법성이 의심되는 미디어법보다 홍보가치가 적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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