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이 알랴 / 박석무

문근영 2018. 11. 19.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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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이 알랴


자유를 박탈당해보지 않은 사람이야 말할 자유와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감옥에 갇혀 말과 신체의 자유를 잃었을 때를 경험해본 사람은 그것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큰 죄의식도 없이, 독재에 반대했다고,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자신들의 정책이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고 인신이 구속된 슬픈 경험을 가졌던 사람은, ‘자유’라는 단어가 얼마나 귀중하고 값있는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산과 중형 정약전, 이미 사교인 천주교에 마음을 끊고, 몸소 천주교를 믿지 않는다고 판결이 났지만, 젊은 시절, 한 때 그것을 믿고 선전한 바가 있으니 두 사람은 멀고 외딴 곳에서 귀양을 살라고 유배명령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어떤 대신(大臣)의 사감이 작용하여 모두가 석방을 주장했으나 그 대신의 고집으로 귀양살이를 떠났습니다. 1801년의 일이니, 1803년이면 세 해째이던 해, 흑산도에 귀양 살던 형님이 보고 싶어 다산은 처음으로 골방에서 나와 강진읍내의 뒷산에 올랐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형님이 계신 곳을 짐작이라도 하면서 사모의 정을 달래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1803년의 음력 9월 9일이라는 날짜가 기록된 시의 제목은 「9일에 보은산 정상에 올라 우이도를 바라보다」 였습니다. 간단한 해설이 있습니다. “꼭대기에 올라 서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니, 산들이 얽혀 있고 안개구름 사이로 나주(羅州: 흑산도가 소속된 고을)의 여러 섬들이 역력히 보였다. 다만 어떤 섬이 우이도인가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날 따라온 승려가 보은산은 우이봉이라고도 부르며 정상의 두 봉우리는 형제봉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양쪽이 모두 우이봉인데 서로 바라만 보고, 특별히 이름도 형제봉인데 그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어서 슬픔만 떠올라 기쁨도 없이 돌아와 시를 짓는다.”라는 글입니다.

……사람 눈의 힘은 멀리는 못 보니                         人眼之力苦不長
      백 걸음 밖의 얼굴도 분간 못하네                      百步眉目已微芒
      더구나 막걸리 같은 안개구름 껴있어                 況復雲 濃似酒
      눈앞의 섬들도 자세히는 못 보네                       眼前島嶼猶難詳
      먼 곳을 오래 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                  瓊雷騁望嗟何益
      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은 모른다네          苦心酸腸人不識
      꿈속에서 서로 보듯 안개속 바라보다                 夢中相看霧中望
      눈에서 흐르는 눈물 마르자 하늘땅이 깜깜하네    目穿淚枯天地黑

정약전이 소흑산도라고 부르는 우이도(牛耳島)에서 거주했는데, 다산이 오른 강진읍의 뒷산이 우이봉이고,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정상의 두 봉우리가 형제봉이라니 하도 기가 막혀 산에서 내려오고 말았다는 내용이 시에 담겼습니다. 유배객인 갇힌 자들의 서러움이 글과 시의 행간에 묻어나는 내용입니다. 죄 없이 귀양 살던 다산 형제, 남인이었기에 집권층인 반대파들에게 당하던 서러움이 지금의 우리 가슴에도 절절이 스며져 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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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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