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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장의 덫에 갇힌 사회 / 임성진

문근영 2018. 11. 19.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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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덫에 갇힌 사회


                                                       임 성 진(전주대 행정학과 교수)

녹색뉴딜사업의 예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4대강정비사업이 강 살리기와 무관한 토목사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정부는 또한 온실가스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기후변화방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하면서, 한편으로는 원자력발전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높여 핵발전 초강국을 건설할 생각이다. 현재 2.4%인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을 2030년까지 11%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도 정작 그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높은 가격에 사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축소, 폐지하고 있다. 그리고 환경보호를 위해 자전거타기를 홍보하면서 소위 자전거고속도로라는 것의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녹색성장의 현주소이다.

정부주도 녹색성장의 이러한 이중성에 대해서는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여전히 가장 주목받는 정책아젠다로 통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미 환경주의자들이 주창해온 녹색사회론이 그간 별로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한 것에 반해 유독 토목건설위주의 양적 성장에 집착하는 정부의 녹색성장개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끝없는 소비와 성장을 통한 번영, 이제 한계 드러내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 배경에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지독한 성장중독증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 단기간에 엄청난 속도의 고도성장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세계 11위권의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 너무 짧은 기간에 돈벼락을 맞아서일까? 이젠 저성장의 선진국 경제유형으로 접어들고 있는데도 사회는 여전히 발전패러다임의 전환을 거부하고 성장과 소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본의 탐욕이 심해져 소중한 정치적, 사회적 가치들을 버리고 물질만능주의의 천박함에 지배당하는 안타까운 사회가 되었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벌고 쓰며 쉽게 버리는 재미를 더 키우고 싶은 욕망이 대통령을 뽑는 기준조차 오로지 경제에만 두었다. 지나버린 고도성장의 시대로 돌아가면 끝없는 부의 욕망이 채워지리라 믿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도의 양적 성장이 사회를 번영으로 인도한다고 믿어왔다. 경제적 수입의 증가 그 자체가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고 더욱 부유하고 향상된 삶의 질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구촌 전체를 보아도 성장은 분명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바로 그 이익이 불공평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세계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지구전체수입에서 겨우 2%만을 벌고 있다. OECD국가들의 부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양극화현상은 20년 전보다도 더 악화되었다. 현재의 미국발 경제위기가 오기 훨씬 이전부터 선진국에서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는 반면 중산층의 실질수입은 전혀 늘지 않고 있다. 부가 소수에게 흘러들어감으로써 성장은 오히려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을 궁핍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의 형평성 문제는 지금까지 고수해온 번영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더해주고 있다.

경제팽창은 자원의 소비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데, 그 영향은 이미 자연계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정도가 되었다. 20세기 마지막 25년의 기간 동안 지구촌경제는 두 배로 성장했으나 지구의 생태계는 그보다 더 큰 규모인 60%가 파괴되었다. 이산화탄소배출량은 1990년 수준에 비해 40%나 증가했으며 석유와 같은 주요 에너지의 부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90억의 지구촌사람들이 모두 OECD국가와 같은 수준의 풍요를 누리려면 2050년까지는 현재보다 15배, 그리고 금세기 말까지는 40배 더 큰 경제규모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경제가 어떠한 모습을 띠고 어떻게 운용될지를 생각해본다면, 성장을 통해 지구촌이 공평하고 지속적인 번영을 이룬다는 게 가능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바람직한 성장의 재규정이 시급한 때

이처럼 전통적인 성장은 더 이상 미래를 위한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반(反)성장이 사회적 안정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이러한 성장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신뢰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우며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새로운 창조적 발전모델을 수립해야만 한다.

새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장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무분별한 소비팽창을 억제하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경제는 지속적인 소비의 증가에 의존하고 있어 스스로가 ‘소비주의의 새장(iron cage of consumerism)’에 갇혀있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는 소비가 증가하고 유동성이 풍부해져야만 경제가 계속 유지되거나 성장할 수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와 탐욕에 놓여있다. 끝없이 소비증가를 자극하는 경제체제의 전환과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없이는 한국의 미래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멀쩡한 강을 파헤치고 산을 허물며 도로와 아파트를 건설하는 데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사회의 창조를 위한 바람직한 성장의 재규정이 시급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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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성진
· 전주대학교 교수(사회과학부 행정학과)
· 베를린자유대 정치학박사
· 전주대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소장
· 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8기)
· 전 베를린 자유대학교 환경정책연구소(FFU) 연구원
· 저서 : 『Least-Cost Planning als Losungsansatz klimabezogener Energiepolitik』,『물문제의 성찰』(공저), 『International Perspectives of Energy Policy and the Role of Nuclear Power』(공저)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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