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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름날의 시골 풍경 / 박석무

문근영 2018. 11. 15.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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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시골 풍경


오래 전에 다산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만약 다산이 세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좋은 세상에서 살았다면 학자나 경세가의 처지가 아니라 순수한 서정시인으로 활동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저의 생각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사물의 미세한 모양까지를 절절하게 읊는 시 짓는 수법은 너무도 사실적이고 그림 같은 표현이 많습니다. 탁월한 묘사와 표현의 수법이 놀라울 정도의 시가 많기도 합니다.

    강위의 마른 뇌성 은은히 소리 울리니          江上空雷隱有聲
    구름 끝에 몇 점 빗방울 후두둑 떨어지자      雲頭數點落來輕
    진짜 비오는 걸로 착각한 개구리란놈           
    깊숙한 숲속에서 지레 개골개골 울어대네    

『여름날 전원의 여러 흥취를 범양 두시인의 시체를 모방하여 24수를 짓다』(夏日田園雜興效范楊二家體二十四首)라는 이름도 길기도 한 제목의 시 한수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범성대(范成大)와 양만리(楊萬里) 두 사람의 시체를 본받아 짓는다는 내용인데, 24수 어느 것 하나 생생한 묘사력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름날 건 뇌성에, 몇 방울의 비가 떨어져도 지레 비를 피해 숲속 깊이 숨어서 개골대는 개구리의 울음을 어쩌면 그렇게 멋지고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보다는 동물적 감각으로 낌새를 먼저 느끼는 개구리의 생태를 자세하고도 면밀히 관찰하여 그런 표현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역시 다산의 시재(詩才)는 대단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내기 활 쏘고 취해서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길      醉步之玄賭射歸
    석양에 사람 그림자 멀리 들쑥날쑥하여라           夕陽人影遠參差

이런 멋진 표현도 있습니다.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비틀거릴 때, 석양에 사람 그림자가 멀리서 들쑥날쑥하는 모습, 여름날의 시골 활터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내기 활쏘기에 딴 돈으로 한잔 들이켰으니 기분이야 얼마나 좋았으며,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석양빛에 그림자로 보이는 풍경, 과연 누가 이런 멋진 모습을 시어로 담을 수 있을까요. 부패한 세상에 분노하고, 세도정치에 진절머리를 느끼며, 국가 개혁에 온통 정신을 쏟던 다산, 한가한 노년기에는 이런 멋진 서정·서경의 시를 짓고 세월을 보내면서 세상을 관조하였습니다. 시를 지은 해가 신묘(辛卯)년이니 1831년인 70세 때의 시입니다. 그런 노인에게 어떻게 그런 시심이 울어났으며, 그런 묘사력이 있었을까요.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정밀하게 분석하는 힘이 있었기에 그의 학문도 대체로 정확하고 정밀함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속에 분개하느라 안정을 찾지 못하고 흔들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우리도 언제 쯤 그런 멋진 시심을 회복하여 안정된 정서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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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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