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아, 내 부음 들어도 오지 말고 곡은 한번만 해라”
제자를 향한 애틋한 정(情)이 담긴 다산 정약용 생전의 ‘마지막 친필 편지’ 등 다산 편지 29통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이번에 나온 다산의 마지막 편지는 다산이 1836년 2월 22일 타계 직전 전남 강진에서 찾아온 애제자 황상에게 제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한 것이다.
다산 전문가인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다산이 아꼈던 황상에게 보낸 친필 편지 32통, 형 정약전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 1통을 황상이 소책자로 묶은 ‘다산여황상서간첩(茶山與黃裳書簡帖)’ 전문을 번역했다”며 “이 중 정약전의 편지 등 4통은 다산 시문집 등에서 공개된 바 있으나 나머지 29통의 내용은 처음 확인된 것”이라고 28일 밝혔다. 이 서간첩은 다산 제자 윤종진의 6세손인 윤영상(61) 다산금속 회장이 정 교수에게 공개한 것. 이전까지 공개된 다산의 친필 편지는 50여 통이다.
마지막 편지는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만난 제자 황상이 다산의 고향인 경기 마재(현 남양주시)에서 열린 스승의 회혼례(回婚禮·결혼 60주년 기념잔치)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스승에게서 받은 것이다. 다산은 병이 위중해 잔치를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으나 18년 만에 만난 애제자가 하직 인사를 하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애틋한 마음을 드러낸다. 황상은 이 편지를 지니고 강진으로 가던 중 스승의 부고를 듣고 발길을 되돌렸다.
“준엽이(제자 손병조)는 이미 고인이 됐고 안석이(제자 황경)는 여태 서객(書客)으로 있으니, 하나는 슬프고 하나는 불쌍하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아프다. (내) 부고를 듣는 날 군(황상)이 마땅히 연암(제자 황지초)과 함께 산중에서 한 차례 울고 지난 일을 얘기하며 함께 그치도록 해라….”
정 교수는 “제자들이 힘들 것을 염려해 부고를 들어도 오지 말고 산중에서 한 차례 곡하는 것으로 문상을 대신하라고 당부한 스승의 애절한 심정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 서간첩은 다산이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 1802∼1808년의 강진 유배 초기 시절 엄격한 교육 방식을 엿보게 한다.
제자들에게 책을 일일이 베껴 쓰게 한 것이 대표적. 다산은 황상이 영격(影格·책을 베껴 쓸 때 사용하는 도구)을 돌려주지 않고 가져가자 “네 건망증은 도무지 고치기 어렵겠다. 이번에 부쳐 오너라. 다 적지 않는다”고 편지를 보냈다. 황상이 기방을 출입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자 “멋대로 놀며 지내느라 공부는 어느새 까마득해졌다. 하우(下愚·아주 어리석고 못남)의 사람이 된 뒤에야 그치게 될 것이다”고 따끔히 나무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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