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백사람의 꾸짖음보다는 한사람의 알아줌을 / 박석무

문근영 2018. 11. 21. 07:46



 

583

 

백사람의 꾸짖음보다는 한사람의 알아줌을


진리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아무나 진리를 터득하여 그 값이 어느 정도인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를 발견하여 저술로 남긴들 제대로 알아주는 경우는 적고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일반적인 세상의 일입니다. 옛날 서양에서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실만 기억해도, 진리가 세상에 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금방 이해하게 됩니다.

벼슬길에서 쫓겨나 먼먼 바닷가에서 귀양살이로 생애를 보내던 다산은, 다른 희망을 접고 오직 진리를 탐구하여 뒷세상에 저서를 전하려는 욕심만으로 저술작업에 생을 걸었습니다. 주야불철하며 온 정성을 책 쓰는 일에 바치면서도 하나의 염려는 자신의 책이 뒷세상에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여러 곳에서, “나의 바람은 너희들이 마음을 가라앉혀 연구에 몰두해 심오한 책의 이치를 통한다면 다행이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궁하게 살아도 나는 걱정이 없겠다”(示二子家誡)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간절한 이야기로 편지를 이었습니다. “지식인[君子]이 책을 지어 세상에 전해지게 하려는 일은 오직 한사람의 알아줌을 얻으려는 것이지 온 세상 사람들의 꾸짖음이야 그대로 두어도 된다. 만약 내 책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이가 높은 분은 너희가 아버지로 섬기고 너희와 비슷한 나이라면 형제로 삼아도 또한 좋을 것이다.”(君子著書傳世唯求一人之知 不避擧世之嗔 如有知我書者 若其年長汝等父事之 ?與爲敵 汝等結爲昆弟亦可也 : 同上) 이 얼마나 간절한 바람입니까. 자신이 연구해 저술한 저서는 진리에 가깝다는 확신 아래 오래오래 전해지기를 바라던 뜻이 저절로 묻어나는 글입니다.

“오직 한사람의 알아줌을 구한다.” 바로 거기에 학자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학문과 진리에는 다수결이 반드시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최고 비결인 다수결의 원리, 진리와 학문에는 절대로 통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런 데서 밝혀집니다. 다수결이 만병통치가 아님도 다산은 분명히 밝혔습니다. 백사람의 우중(愚衆)보다는 단 한사람의 진리를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역사를 이끌고 가는 주역임도 거기서 나타납니다.

연찬을 거듭하여 다산의 저서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일이 그래서 아직도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목록보기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