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을 보고 날아든 채색 깃털새 한마리 | ||||||||||||
쓸쓸히 하늘가에 떨어져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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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茶山’(한승원 작)에는 강진유배 첫날 갈 곳 없이 처량한 신세가 되어 있는데 후덕한 주모가 나타나 그를 거문고와 주역책이 놓인 방을 쓰게 한다. 연두색 머리처네(스카프)를 쓰고 쪽빛 치마를 입은 주모의 딸, 미모의 독신녀는 어느 날 다산을 급습, 독백과 함께 유혹하여 골인한다. “…유배 풀리면 훅 떠나갈 양반한테 정을 주지 말라(주모)하고 말리고 또 말렸는디 이년은 이렇게 미욱하고 멍청하게 이발로 걸어서 이방으로 들어와서 이러고 있구만이라우 영감. 이 못난 년을 오늘밤 어떻게 하실라요, 차라리 꽉 죽여주시오” 그녀는 정약용의 가슴으로 허물어지듯이 쓰러졌다… 하느님이 이 못된 이 선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남의 여자를 훔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다산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정이 더 깊었다) 다산은 ‘여자의 품은 남자를 황홀하게 하지만 거기에 취하여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약이 되기도 하고 죽이게 하는 독이나 칼이 되기도 하고 마물(魔物)이기도 한 것이다. 한참 좋을 때 떠나야 하는 것이 여자의 품이다’ 비록 소설속의 얘기지만 다산은 그 여인의 품에서 오래 머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산은 강진 초당 생활 중 소실여인에게서 홍임(紅任)이란 딸을 얻었다.(이형택 교수 논문) 1819년 다산은 유배가 풀려 귀향(당시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만현리)길에 홍임 모녀를 데리고 상경, 자기의 고향에도 데리고 갔으나 모녀는 계속 머물지 못하고 다산 초당으로 내려갔다고 전해질뿐 모녀 행방은 그 후 알 길이 없다. 최근에 발견된 다산작품 5점(그림, 액자, 서첩 각 한점, 간찰 2통)이 서울 인사동 네거리 ‘공(孔)’화랑에서 전시(6월 10일~24일) 공개되었는데 이 작품들로 다산은 서화가로서도 숨겨진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나 첩실의 딸 홍임을 상징한 매조도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다. 칠언절구로 된 시를 풀이하면(정민 한양대교수) ‘고매(古梅)의 묵은 가지가 죽은 줄로 알았는데, 봄을 맞아 푸른 가지를 쭉 뻗더니만 내친김에 기대하지 않은 꽃을 마저 피웠다. 그 꽃을 보고 날아든 채령작(彩翎雀, 채색 깃털새)한마리가 쓸쓸히 하늘가에 떨어져 머물러 있다.’ 정교수는 그 시만 가지고는 의미를 알 수 없으나 무엇인가 감춰진 행간이 있다고 했다. 시를 지은 시기는 1813년 8월 19일, 매화가 절기 아닌 추석이 지난 뒤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장소는 강진의 다산 초당 별칭인 자하산방이다. 마르고 썩은 가지에 새싹이 돋아 꽃을 피웠다는 것은 늙고 병든 자신이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새 인연을 맺게 된 사정을 암시하고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깃털의 작은 새는 그사이 얻은 딸을 뜻하는 것이라 했다.
필자는 최근 매주에 한번 남양주시 조양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기념 문화관을 방문, 여유당 주변 동산을 산책해 왔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다산이 즐겨 찾았던 수종사가 있는 운길산(雲吉山)앞에는 운길산 지하철역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지어졌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어우러지는 질펀한 두물머리에 자연의 치마폭이 너울거리듯 물너울이 펼쳐지는 것을 맑은 공기 속에서 볼 수 있다. 다산이 유배 중에 그렇게 그리워했던 그의 시문을 떠올리며 그의 고향 산천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아꼈던 산천을 홀로 보는 것 같기도 하여 송구스럽기도 하다. 그의 체취와 정신세계의 일면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다. | ||||||||||||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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