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재 소(성균관대 명예교수)
「오감도(烏瞰圖)」의 작가 이상(李霜)이 그의 친구 박태원의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축하 메시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신문에 보도된 전문은 다음과 같다.
結婚(결혼)은 卽(즉) 慢畵(만화)에 틀님업고 慢畵의 實演(실연)에 틀님업다. 慢畵實演의 眞摯味(진지미)는 또다시 慢畵로 - 輪廻(윤회)한다. *한자음은 필자가 붙였음.
이상(李霜)이 생각하기에 결혼은 만화에 틀림없는데, 신랑, 신부가 만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오늘 실제로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통념으로 만화는, 삶의 진실을 진지하게 표현하지 않고 다소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매체로 인식되었을 터인데, 만화를 실제로 연기하는 당사자들이야 진지한 자세로 결혼에 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진지한 자세가 또 만화라는 것이다. 참으로 시니컬한 이상(李霜)다운 독설이다.
결혼에 관한 숱한 독설들 결혼은 언제나 축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은 결혼을 축복의 대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몽떼뉴는 “결혼은 새장과 같은 것이다. 밖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그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속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애쓴다.”라 하여 결혼이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근대 러시아의 소설가 메레즈코프스키는 말하기를 “늘 현명한 인간이 되고 싶으면 결코 결혼하면 안 된다. 결혼이란 것은, 미꾸라지를 잡으려다가 뱀이 들어있는 자루 속에 손을 집어 쳐 넣는 꼴이 되는 것이다. 결혼할 정도라면 중풍에 걸리는 편이 오히려 낫다.”라고 하여 결혼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초혼은 의무요, 재혼하는 사람은 바보요, 세 번째 결혼하는 사람은 미치광이이다.”라는 네덜란드의 속담이나, “부부는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는 우리나라의 농담도 모두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사실상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한 지붕 아래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오직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가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라 했고,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태항로(太行路)」라는 시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인이 되지 말라 / 한 평생 고락이 타인에서 비롯되네”(人生莫作婦人身 百年苦樂由他人)라 노래했다. 이렇게 서로를 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 나온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이질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암컷과 수컷이 짝지어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또 사람으로 태어나서 결혼하여 자식 낳고 사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닌가? 결혼생활의 어려움은 그것대로 또한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부부가 함께 오래 살면 얼굴도 닮는다는데 이렇게 서로 닮은 부부가 해로(偕老)하며 사는 모습이 실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라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이상(李霜)의 말과 같이 결혼이 만화같이 보일는지는 모르지만, 40년 결혼생활을 한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결혼은 결코 만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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