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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30여년 전 조선 팔도의 모습을 담은 지방지도 / 신병주

문근영 2018. 11. 3. 07:26

제141호 (2009.6.10)


130여년 전 조선 팔도의 모습을 담은 지방지도


신 병 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해남과 진도 지도의 거북선 모습, 천안의 관아건물에 표시된 태극무늬, 양양의 설악산 아래 오색리 약수, 선산의 의구총(義狗 ), 남원의 광한루, 천안 삼거리를 비롯하여, 주요 지역마다 표시된 사고(史庫), 태실(胎室), 척화비(斥和碑)와 사창(社倉). 이러한 모든 것들이 기록 필름처럼 표현된 지도가 있다. 바로 대원군대인 1872년에 그려진 459장의 지방지도들로서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지도는 1876년 개항을 맞이하기 직전 130여 년 전 조선 각 지역의 마지막 모습들을 증언해 주고 있다.


대원군의 야심작, 459장의 지도

 

1866년의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 등 서양 열강과의 잇따른 전투에서 승리한 대원군은 국방 강화의 필요성을 다시금 인식하였다. 전국에 ‘양이침범(洋夷侵犯) 비전즉화(非戰則和) 주화매국(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범을 하는데 전쟁을 하지 않고 화친을 하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척화비를 전국에 세우면서 항전의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진 것도 이러한 인식의 발로였다. 대원군은 서양의 침략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응책을 구상하였다. 관제와 군제의 개편, 군사시설의 확충과 함께 전국 각 지역, 특히 군사시설에 대한 상세하고 정확한 파악을 위하여 각 지방의 읍지 편찬을 명하는가 하면 전국의 지도 제작을 지시하였다. 1871년 전국에 읍지 편찬 작성을 명령한 대원군은 이듬해인 1872년 3월에서 6월에 걸쳐 전국 지방의 지도를 그려 올리게 했다.  가로 70센티미터, 세로 1미터 내외로 대형지도로 제작된  459장의 지도에는 섬, 진 등 국방에 관한 내용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각 군현 마다 특징적인 정보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130여 년 전 조선사회의 이모저모를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전라도의 지도들은 음양오행 사상에 입각하여 청, 백, 홍, 흑, 황의 색채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점이 주목을 끈다. 오늘날 호남지방이 예향(藝鄕)으로 불리고 있는 것에서 지도에 반영된 조선시대 화원들의 예술적 전통을 생각할 수 있다.

 

1872년 지방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책이 아닌 낱장 지도로서, 전국 대부분의 지방을 포함하고 있는 대축척 대형지도라는 점이다. 각 지도의 크기는 가로 70~90 Cm, 세로 100~120 Cm 정도로, 지역 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일정한 축적이 적용된 오늘날의 측량지도와 같이 정확한 지도는 아니지만, 지도의 내용은 매우 상세하고 정밀하며 회화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산과 하천, 도로, 고개, 성곽, 포구, 능원(陵園), 사찰, 서원, 향교, 누정(樓亭), 면리, 역, 점(店), 시장(市場)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모습을 상세하게 담았다. 대원군대의 국가정책을 반영하듯 사창(社倉)이 전국에 그려진 것도 흥미롭다. 대원군은 고리대금업으로 전락한 환곡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국에 사창(社倉)을 설립할 것을 지시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는지의 여부를 지도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거북선, 사고(史庫), 척화비가 등장하는 지도

 

1872년 지도에는 대원군대 강력하게 추진된 해방(海防)정책이 특히나 강조되어 있다. 각 지방에 소속된 영(營), 진보(鎭堡), 목장, 산성 등 군사 관련 시설을 별도로 그린 지도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국경 방어와 관련된 진보 지도의 경우 경기도 2매, 전라도 28매, 경상도 41매, 황해도 19매, 평안도 45매, 강원도 2매 등 총 139매에 달한다. 전체 지도의 30% 정도가 국방지도라는 점은, 전국에 그려진 척화비와 함께 대원군대의 대외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라도 남원 지도는 459장 중에 가장 아름다운 지도로 꼽힌다. 지도에 표시된 건물들을 빼면 산수화가 되고 다시 건물 표시를  넣으면 지도가 될 정도로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의 모습을 띠고 있다.  중앙에 크게 그려 놓은 남원 읍성은 산수화와 그림지도를 구별해주는 부분으로, 마치 활짝 핀 꽃의 꽃술 같다. 광한루와 오작교는 춘향의 정절과 함께 남원의 상징이다. 당시 이곳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던가는 지도에도 한 눈에 알아볼 만큼 큼직하게 그렸다. 『춘향전』의 영향으로 19세기 후반 조선시대인의 가슴에도 남원은 춘향이의 고을로 인식되었고, 춘향전의 무대인 오작교는 명소로 각광을 받았음을 지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오늘날 부산광역시를 포괄하는 동래부 지도에는 국방을 중시했던 당대의 분위기가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읍치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된 읍성이 그려져 있는데 익성(翼城), 옹성(甕城)으로 이루어진 모습과 성을 둘러가면서 세워진 망루의 모습이 성내의 관아건물과 함께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조선시대 동래부는 왜적 방어의 최전방 기지였다. 읍성을 중심으로 하여 해안지역에 좌수영, 부산진, 다대진(多大鎭) 등의 진영을 그렸으며, 북쪽에는 금정산성의 모습도 나타난다. 남쪽의 절영도(絶影島) 근처에는 왜인들과 교역을 했던 왜관(倭館)이 그려져 있어서, 동래부 전체가 동남해안 방어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전통사회 이모저모를 생생하게 전달

 

이외에도 각 지방의 지도에 담긴 내용은 다양하다. 우선 읍성 안의 관아 배치, 산과 하천, 도로, 시장, 고적, 봉수(烽燧), 조선시대 농협의 기능을 했던 사창 등은 거의 모든 고을에 표시되었다. 왕이나 왕자, 공주의 태를 봉안한 태실, 실록과 의궤 등 기록물을 보관한 사고, 의로운 소와 개의 무덤인 의우총(義牛塚)과 의구총(義狗 ) 등은 연고 지역에 나타나 있다. 왕실, 기록물, 의리 등을 중시했던 선조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아 건물 뒷 편에 각기 다는 모습을 한 감옥이 그려진 것도 흥미롭다. 백성들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리라. 전라도 해남과 진도, 순천 지도에 표시된 구선(龜船)은 당시에도 거북선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고지도의 색채 또한 아름답다. 사용된 색채는 광물이나 식물에서 채취한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어서 색채가 선명하고 변색이 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459곳 조선시대 군현의 모습이 담긴 1872년 지방지도는 조선 팔도 각 지방의 130여년전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도시로 발전한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기억 속에 잊혀졌던 전통사회의 이모저모가 1872년 지방지도에 담겨져 현재에도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글쓴이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저서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함께, 2007

          『제왕의 리더십』, 휴머니스트, 2007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중앙M&B, 2003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돌베개, 2005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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