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병 욱(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이젠 냉정하게 짚어 생각해보자. 노무현전대통령의 죽음과 그 후 전개된 사태까지를 관통하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가. 특히 언론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캐내고 밝히기 위한 공론(公論)의 장을 제대로 마련해주고 있기나 한 것인가.
지난 국민장 기간 동안 TV와 신문들은 따라가기도 숨이 벅찬 ‘사실’들을 끝도 없이 쏟아냈다. 분향소마다 넘치는 추모인파 보도가 1주일 내내 이어졌다. 노전대통령의 인생역정과 퇴임 후 고향 집 삶도 눈에 선하게 그려냈다. 어린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씽씽 달리던 전직 대통령 할아버지 영상을 보며 국민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추모열기가 뜨거워지자 추모보도가 늘었고 보도물량이 늘자 열기가 더욱 고조되는 상승작용이 일어났다.
언론, 심층 분석이나 본질 접근에 소홀 그러나 그 정도였다. 사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나열했으되 그 안에서 진실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역사상 예(例)를 찾을 수 없는 직전 대통령의 투신이 왜 일어났고, 또 그런 비정상적 죽음에 역사상 예를 찾을 수 없는 추모인파가 몰린 건 무엇 때문인지 언론은 제대로 분석하고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언론은 장례식도 끝났으니 슬픔은 역사 속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의례적으로 정치계에 원인 분석을 요구했지만 진실추구를 제일의의 목표로 삼아야할 언론치고는 참으로 해괴한 주문이었다.
물론 ‘죽음의 진실’은 쉽게 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스스로를 죽일 때의 번민은 더욱 알 길이 없다. 유서를 통해 세상에 남기려는 뜻을 전했다고 보아야 옳겠지만 그런다고 죽음에 이른 진실이 완벽하게 재구성될 수야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상황과 사실(팩트, fact)의 얼개 안쪽에 숨은 진실, 아니 그 한 끄트머리라도 잡아보려고 노력할 책무가 언론과 언론인에게는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엄청난 추모인파 속에 숨은 진실도 마찬가지다. 국민장 기간 동안 전국엔 수백 개의 자발적 분향소가 생겼다. 덕수궁 앞에는 가로수 밑동마다 촛불과 영정이 놓였다. 봉하 마을에선 분향을 끝낸 수천 명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수백만 명이 국화를 올리고 향을 피우고 눈물을 흘리고 통곡했다. 수천, 수만 개의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가 운구행렬 위로 날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가능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추모의 대열에 동참하게 만들었을까.
언론이라면 흥분하고 궁금해 할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우리 언론은 그 일의 전문가적 분석이나 본질의 접근에 소홀했다. 아니,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신문들은 그 흔한 여론조사 한번 안했고 방송 역시 흔하디흔한 전문가 토론 프로도 편성하지 않았다. 다만 단편적 느낌이나 감으로 ‘현 정권의 잘못된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반감, 분노’ 나 ‘정치탄압에 몸 던져 항거한 전직대통령에 대한 동정 ’, ‘그의 업적과 개인적 성정, 매력의 재발견’ 등이 추모열풍의 본질인 것 같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입을 닫지는 않겠노라는 처연한 결기 그런 단편적 분석들은 아마 하나하나가 다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왜 공론화를 통한 종합적이고 치밀한 분석과정을 거치기보다 기자나 앵커의 단발성 멘트 정도로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또 그런 단편적 분석조차도 ‘이제는 화내거나 원망하지 말고 용서하고 화합하자’는 주류언론의 대승적(?) 주장에 덮여야 하는지를 많은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 많은 성찰과 더 많은 공론, 더 많은 고민, 더 많은 진실 추구의 노력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연유로 나는 앞으로 있어야할 공론 무대에 이런 명제를 던지고 싶다. 이번 추모 열기는 촛불정국 이후 우리 사회에 퍼진 순응주의가 이제 끝났음을 선언한 국민의식이라고 말이다.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질서나 체제를 깨트리는 행위로 비난 받을까 두려워 입을 닫았던 이들이 이제는 절대 그러지 않겠노라고 처연한 결기를 다진 결과라고 말이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할 일은 앞으로 다시 않겠다는,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해졌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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